초등학교 때 평균 수준이던 성적이 중·고교 시기 또래보다 떨어진 학생일수록 이후 경찰 경고 처분이나 유죄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대규모 연구 결과가 나왔다. 성적 하락 자체가 범죄의 원인이라는 뜻은 아니지만, 성적 변화가 정신건강, 가정환경, 교우관계 문제를 보여주는 조기 신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앨리스 위커샴 박사 연구팀은 잉글랜드에서 1990~1997년에 태어난 학생 430만명의 학업 성취도와 범죄 기록을 분석한 결과를 30일 발표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발달·생애과정 범죄학 저널'에 실렸다.
연구팀은 영국 국가학생데이터베이스의 성적 자료와 경찰국가컴퓨터의 범죄 자료를 연결해 분석했다. 성적은 7세, 11세, 16세 때 치르는 국가 평가 결과를 기준으로 삼았다. 범죄 기록은 16세에 중등교육을 마치기 전과 학교를 떠난 뒤 21세가 될 때까지 처음 받은 유죄판결이나 경찰 경고 처분을 기준으로 했다. 폭력 범죄를 포함해 모든 범죄 유형이 포함됐다.
◇성적 하락군 3명 중 1명, 16세 전 범죄 기록
연구진은 학생들을 성적 흐름에 따라 5개 집단으로 나눴다. 계속 평균 이상이던 집단, 평균 수준에서 상위권으로 오른 집단, 평균 수준에서 하위권으로 떨어진 집단, 하위권에서 평균 수준으로 오른 집단, 계속 하위권에 머문 집단이다.
전체 학생 가운데 36만9557명(8.8%)은 16세에 중등교육을 마치기 전 처음으로 유죄판결이나 경찰 경고 처분을 받았다. 21만936명(5%)은 학교를 떠난 뒤 21세가 될 때까지 같은 처분을 받았다.
차이는 성적이 떨어진 학생 집단에서 크게 나타났다. 또래와 비교해 성적이 평균 수준에서 하위권으로 떨어진 학생은 3명 중 1명이 16세 전 유죄판결이나 경찰 경고 처분을 받았다. 10명 중 1명은 학교를 떠난 뒤 21세까지 기간에 처분을 받았다. 성적이 계속 낮았던 학생도 위험이 높았지만, 평균 수준에서 성적이 떨어진 학생은 위험성이 더 높았다.
초등학교 초기 성적이 낮았던 학생들 사이에서도 이후 흐름에 따라 차이가 컸다. 낮은 성적이 계속 이어진 학생은 청년기에 경찰 경고나 유죄판결을 받을 위험이 또래보다 53% 높았다. 반면 성적이 평균 수준으로 올라온 학생은 이런 위험이 거의 늘지 않았다. 낮은 성적이 고정된 낙인이 아니라, 지원에 따라 이후 위험도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성적표는 낙인이 아니라 신호"
연구진은 성적 하락이 범죄를 직접 일으킨다는 의미로 보지는 않았다.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 뒤에는 우울·불안 같은 정신건강 문제, 가정 불안, 경제적 어려움, 친구 관계, 학교 적응 실패 등이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수집하는 성적 기록 속에 학생에게 도움이 필요한 시점을 보여주는 신호가 있었다"며 "성적을 학업 능력만이 아니라 학생이 처한 더 넓은 환경을 보여주는 지표로 본다면, 학생이 어려움을 겪는 시점을 일찍 알아차리고 적절한 지원을 제공할 수 있다"고 했다.
연구진은 성적표를 학생을 낙인찍는 도구로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교사와 부모가 "무슨 일이 있는지" 묻고, 필요한 도움을 연결하는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연구진은 조기 개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연구진은 "12세 전까지 부모 교육 프로그램을 통한 조기 개입은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반사회적 행동을 줄이고, 취약 계층의 학업 성취도 높이는 장기 효과가 있다"고 했다.
연구진은 학교가 성적 하락을 발견했을 때 보충학습만 제공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봤다. 필요한 경우 정신건강 상담, 가족 지원, 특수교육, 직업교육 경로 같은 지원과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적이 꺾인 학생을 문제 학생으로 분류하기보다, 어려움이 누적되기 전 붙잡는 신호로 활용해야 한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