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이 반도체와 AI(인공지능)를 넘어 바이오 산업으로 확산하고 있다. 미국 의회가 자국의 자본과 바이오 기술이 중국으로 흘러가는 것을 통제하기 위한 입법에 착수하면서 글로벌 제약·바이오 산업의 투자와 연구·개발 협력 구조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중국 바이오 기업과 거래해 온 글로벌 제약사들이 규제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협력선을 다변화할 경우,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에는 새로운 사업 기회가 열릴 수 있다. 다만 지정학적 반사이익을 실질적인 성장으로 연결하려면 독자적인 기술과 개발 역량을 갖춘 핵심 파트너로 올라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中 신약 굴기에 美 기술 장벽 높인다

미국 하원 미·중 전략경쟁특별위원회 의원들은 이달 초 '바이오기술 투자 국가안보법'을 발의했다. 법안의 핵심은 미국의 대외 투자 심사 체계를 규정한 '포괄적 해외 투자 국가안보법'에 바이오 분야를 추가하는 것이다. 바이오 의약품의 연구·개발·제조·사업화뿐 아니라 신약 발굴 플랫폼, 임상 개발 역량, 생산 노하우와 관련 지식재산권까지 심사 범위에 포함하도록 했다.

이번 법안은 중국 등 우려국 기업이 관련된 라이선스 계약과 합작 투자, 지분 투자 등을 중점 검토 대상으로 명시했다. 다만 아직 하원 입법 절차가 진행 중이며 실제 규제가 시행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어떤 거래가 금지되고 어떤 거래가 신고 대상이 될지는 후속 규칙 제정 과정에서 구체화될 전망이다.

미국이 바이오 분야의 대외 투자와 기술 이전까지 국가 안보 심사 대상으로 확대하려는 배경에는 중국의 신약 개발 역량 확대가 있다. 중국 바이오 기업들은 임상시험 속도와 비용 경쟁력, 풍부한 연구 인력을 앞세워 항암제와 이중 항체, 항체·약물 접합체 등 첨단 분야에서 신약 후보 물질을 빠르게 내놓고 있다. 서구 제약사들은 부족한 신약 파이프라인을 보완하기 위해 중국에서 후보 물질을 도입하거나 공동 개발 계약을 체결해 왔다.

실제로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은 지난 5월 중국 헝루이제약과 초기 단계 신약 프로그램 13개를 대상으로 한 공동 개발·라이선스 계약을 발표했다.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이 헝루이제약에 지급하는 선급금과 예정 지급액은 최대 9억5000만달러다. 옵션 행사와 개발·허가·판매 단계별 성과금을 모두 합친 잠재적 계약 규모는 최대 152억달러에 이른다. 중국 바이오 기업과 글로벌 제약사 간 라이선스 거래 규모도 최근 수년간 빠르게 늘고 있다. 미국 정치권에서는 이런 거래를 통해 자본뿐 아니라 임상 개발 경험과 제조 노하우, 지식 재산이 중국으로 이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체 불가능한 경쟁력' 갖춰야

이러한 흐름은 K바이오에 기회가 될 수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중국과의 거래에 따른 규제와 정책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신약 후보물질 도입처와 공동 개발 파트너, 위탁 개발 생산(CDMO) 기지를 다변화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바이오 의약품 대량 생산과 품질 관리 역량을 바탕으로 미국과 유럽에서 품목 허가를 받은 경험을 쌓아왔다. 항체 의약품과 바이오시밀러, 항체·약물 접합체, 세포·유전자 치료제 등에서도 국내 기업들의 기술 수출과 생산 투자가 계속되고 있다.

다만 미·중 갈등에 따른 공급망 재편이 곧바로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수주 확대와 기술 수출 증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인도와 싱가포르, 일본, 유럽 국가들도 바이오 연구·개발과 생산 시설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한국 기업이 지정학적 우호국이라는 이유만으로 선택받을 수 있는 시장은 아니라는 뜻이다.

K바이오가 공급망 재편의 수혜를 얻으려면 생산 능력 확대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초기 후보물질 발굴부터 비임상, 임상 설계, 공정 개발, 허가, 상업생산까지 잇는 통합 역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해외 기업이 도입할 만한 원천 기술과 임상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은 물론, 계약 이후 개발을 완주할 수 있다는 신뢰도 입증해야 한다. 품질과 납기뿐 아니라 데이터 보안과 연구 윤리 등 경제 안보 시대에 요구되는 기준도 선제적으로 갖출 필요가 있다.

바이오업계는 우리 정부도 미국의 법안과 후속 규칙 논의를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규제 범위에 따라 한국 기업이 중국 기업과 공동 개발한 기술이나 중국에서 생산한 원부자재가 미국 기업과의 거래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미·중 갈등은 세계 제약·바이오 산업의 협력 지도를 다시 그릴 수 있는 변수다. 새로운 공간이 열리고 있지만 K바이오가 그 자리를 차지할지는 기술력과 개발 속도, 규제 대응 능력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