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파인 아일랜드 빙하 근처에서 빙하가 무너져 내리는 모습./PNAS

사람이 배출한 온실가스가 바다를 따뜻하게 만들어 남극 거대 빙하를 약 20% 더 멀리 밀어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구진은 남극 대형 빙하의 후퇴에 인간이 미친 영향을 수치로 따진 첫 연구라고 평가했다.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과 영국 남극조사단 공동 연구진은 서남극 파인아일랜드 빙하의 후퇴 과정을 분석한 결과를 29일 국제 학술지 '크라이오스피어'에 발표했다. 파인아일랜드 빙하는 서남극 빙상의 얼음이 아문센해로 빠져나가는 거대한 얼음길이다. 전 세계 해수면 상승에 큰 영향을 주는 빙하 중 하나로 꼽힌다.

연구진은 파인아일랜드 빙하가 1940년대 이후 어떻게 대륙 안쪽으로 밀려났는지 컴퓨터 모델로 재현했다. 실제 관측된 빙하 두께와 후퇴 기록을 바탕으로, 인간이 만든 온난화가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를 비교했다. 그 결과 온실가스 배출로 따뜻해진 바다가 빙하를 약 18~20% 더 멀리 밀어낸 것으로 나타났다.

◇따뜻한 바닷물이 빙하 밑을 녹였다

파인아일랜드 빙하는 1940년대부터 빠르게 물러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진은 따뜻한 바닷물이 빙하 아래로 깊숙이 파고든 것이 시작점이었을 것이라고 봤다. 바다 위로 뻗은 빙하의 아랫부분이 녹으면, 육지 쪽 빙하를 붙잡아주는 힘도 약해진다. 그러면 빙하는 더 빠르게 바다로 흘러나간다.

인간이 데운 바다의 영향은 196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커진 것으로 분석됐다. 2015년 기준 인간 영향이 없었다면, 빙하가 바닥에서 떨어져 바다에 뜨기 시작하는 경계가 실제보다 약 4km 덜 후퇴했다. 연구진은 이 차이가 관측된 후퇴 폭의 20% 수준이였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기후변화가 파인아일랜드 빙하의 후퇴를 뚜렷하게 악화시켰다"며 "20세기 중반 이후 주변 바다가 계속 따뜻해지지 않았다면 빙하는 지금처럼 멀리 물러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폭염처럼 빙하 후퇴 원인도 따졌다

그동안 폭염이나 홍수, 산악 빙하 후퇴에 인간 활동이 미친 영향을 따지는 연구는 많았다. 하지만 남극 대형 빙하는 달랐다. 빙상은 천천히 움직이고, 바다 온도와 해저 지형, 얼음 두께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원인을 따지기 어려웠다. 이번 연구는 남극 주요 빙하의 변화에도 인간 활동의 영향을 숫자로 따질 수 있음을 보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연구진은 파인아일랜드 빙하가 이번 세기 후반 한동안 안정될 수 있다고 봤다. 빙하 아래 바닥에 산등성이 같은 지형이 있어 빙하 흐름을 잠시 붙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온난화가 계속되면 이런 안정기는 오래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22세기에는 인간 활동이 다시 빙하 후퇴의 가장 큰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연구진은 전망했다. 연구진은 "빙상은 반응이 느리다"며 "오늘 배출한 온실가스의 영향은 앞으로 수백 년 동안 남극의 얼음 손실을 바꿔놓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