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도 나이가 들면 사람처럼 치매에 걸릴 수 있다. 갑자기 낮과 밤이 바뀌고 보호자를 알아보지 못한다. 과학자들이 반려견이 치매에 걸렸는지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산책길에서 반려견의 앞다리 보폭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면 치매의 징후일 수 있다.
나타샤 올비(Natasha Olby)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수의대 석좌교수 연구진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반려견 역시 보폭 변화가 인지 기능 저하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확인했다"고 지난 25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수의과학의 최전선'에 발표했다. 개 인지 기능 장애 증후군(CCD), 즉 개 치매를 조기 발견하고 병세를 추적하는 새로운 수단이 제시된 것이다.
◇대뇌 피질이 관장하는 앞다리에 영향
연구진은 노령견 88마리에 목줄을 매고 보호자와 같이 5m 길이 직선 경로를 걷는 실험을 진행했다. 개들의 평균 나이는 12세로, 사람으로 치면 64~72세에 해당한다. 개들은 6개월마다 건강검진과 인지 능력 검사를 받았다. 보호자들은 개 치매 척도(CADES)와 개 간이 통증 평가표(CBPI) 설문지를 작성했다.
보폭은 개마다 체구가 다른 점을 고려해 어깨 높이로 나눈 값으로 보정했다. 평균적으로 노령견들의 흉부 앞다리 보폭은 자기 어깨 높이의 1.08배였다. 실험 결과 개 치매 척도 점수가 10점 오르면 앞다리 보폭이 1.2%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치매 척도 점수는 0~95에 따라 4단계로 분류된다. 8점부터 치매 초기인 경도 인지 장애로 증상이 가끔 나타나지만 24점부터는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상태가 된다.
실험에서 앞다리와 달리 골반 뒷다리 보폭은 인지 기능 변화와 상관관계가 없었다. 올비 교수는 "앞다리는 제동과 자세 안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만 뒷다리는 주로 추진력을 제공한다"며 "그 점에서 앞다리 움직임은 뒷다리보다 대뇌 피질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고 설명했다.
인간의 경우 알츠하이머 치매는 뇌에 있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덩어리가 원인이라고 알려졌다. 아밀로이드 베타는 원래 신경 세포를 보호하는 단백질이지만, 세포에서 떨어져 나와 덩어리를 이루면 오히려 신경 세포에 손상을 준다. 그러면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를 비롯해 뇌 피질 전반이 쪼그라든다. 개가 치매로 대뇌 피질이 위축되면 앞다리를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고 볼 수 있다.
개도 나이가 들면 관절염에 걸리기 쉽다. 보폭 감소가 그 탓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관절염 통증 수준이 같은 개 두 마리를 비교했더니 치매 점수가 높은 쪽의 보폭이 더 짧았다. 연구진은 보폭 변화가 관절 문제가 아니라 뇌에서 비롯됐음을 시사하는 결과라고 설명했다.
◇치매 조기 진단과 관리에 도움
연구진은 이번 결과가 보폭과 치매의 인과관계를 증명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보폭이 줄어 치매가 온다거나 치매 때문에 보폭이 줄었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관관계는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이미 인간에게서 보폭 감소가 인지 기능 저하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2012년 일본 도쿄도건강장수의료센터연구소는 70세 이상 666명을 약 3년간 추적 조사했더니 보폭이 좁은 사람은 넓은 사람보다 인지 기능 저하 위험이 3.4배 높았다고 발표했다. 특히 여성은 5.8배나 높았다.
의료계는 이 점에서 노인들이 의도적으로 보폭을 넓히면 엉덩이와 다리 근육이 강화되는 것은 물론 인지 기능 개선에도 좋다고 본다. 보폭을 조절하려고 뇌를 많이 쓰면 자연스레 주의력, 판단력, 실행 기능이 향상된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반려견의 보폭은 인지 기능 변화를 알아내고 적절하게 대응하는 데 필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연구진은 사람으로 치면 중년인 7~8세 무렵부터 건강검진에 보폭 측정을 포함하면 치매를 조기 진단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반려견 역시 치매 치료제가 없지만 인지 기능 저하에 맞춰 환경이나 식단을 바꾸거나 적절한 운동을 시키는 식으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밤잠 줄고 청력 저하도 치매 징후
올비 교수 연구진은 그동안 반려견이 치매에 걸릴 때 나타나는 징후를 여러 가지 찾았다. 2023년 연구에 따르면 치매 점수가 높은 노령견은 잠들기까지 시간이 더 걸렸고, 수면 시간도 짧았다. 깊은 수면 단계에서 나타나는 느린 뇌파인 델타파도 줄었다. 숙면을 하지 못하면 뇌의 노폐물을 제대로 제거하지 못해 치매 환자의 기억 능력을 떨어뜨린다고 알려졌다.
청력 저하도 개 치매의 징후다. 올비 교수는 2022년 수의 내과학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개는 50㏈(데시벨, 소리 크기의 단위 소리를 아무런 어려움 없이 듣지만, 인지 기능에 문제가 있는 개들은 제트기가 이륙하는 소음에 해당하는 90㏈에서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치매 개의 청력 저하는 삶의 질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건강에 치명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올비 교수는 "노인의 청력 손실은 감각 저하와 운동 능력 상실로 이어져 낙상 위험을 높인다"며 "노령견에서도 같은 연관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참고 자료
Frontiers in Veterinary Science(2026), DOI: https://doi.org/10.3389/fvets.2026.1814017
Frontiers in Veterinary Science(2023), DOI: https://doi.org/10.3389/fvets.2023.1151266
Journal of Veterinary Internal Medicine(2022), DOI: https://doi.org/10.1111/jvim.16510
일본 도쿄도건강장수의료센터연구소(2012), https://www.tmig.or.jp/research/news/albums/abm.php?d=657&f=abm00004726.pdf&n=%E7%A0%94%E7%A9%B6%E6%89%80NEWS_NO.250.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