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 세계 바이오 제약 기업들이 주목하는 플랫폼 중 하나가 '뇌혈관장벽(Blood-Brain Barrier·BBB) 셔틀'이다.
본래 우리 뇌 주변에 있는 뇌혈관장벽은 외부 물질이 우리 뇌로 들어가는 것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뇌를 보호한다. 문제는 이 BBB가 신약 물질이 뇌에 전달되는 것까지 막는다는 것이다.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 같은 신경 퇴행성 질환 치료제 개발에 있어 핵심 난제로 꼽혀왔다.
에이비엘바이오 이상훈 대표는 약물이 이 BBB를 통과해 뇌까지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돕는 'BBB 셔틀' 플랫폼을 앞서 개발한 주인공으로 꼽힌다. '그랩바디-B'라는 플랫폼 기술이다. 2025년 영국 GSK와 약 4조원, 같은 해 11월 미국 일라이릴리와는 약 3조원에 해당 기술을 이전하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그랩바디-B' 기술이 뇌 질환 치료제 개발에 꼭 필요한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지난해 이 같은 성과에 힘입어 코스닥 시가총액 규모 '10조 클럽'에 진입하기도 했다.
24일(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열리는 '바이오USA' 현장에서 만난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는 그러나 "K바이오 기업들이 기술 수출하는 데만 안주하면 안 된다. 임상 2상을 넘어선 신약 후보 물질(파이프라인) 자산을 더 많이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최근 중국 다음으로 한국의 바이오텍이 전 세계 바이오 시장에서 주목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초기 기술력을 임상으로 입증하는 데까진 아직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임상을 계속 진행할 자금력이 중국에 떨어지는 데다, 임상 속도도 아직은 느리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기업들이 임상 2상을 넘어서는 데이터를 갖춘 파이프라인을 많이 확보할수록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도 한국을 주목할 수밖에 없다"면서 "1000원 버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좀 더 뛰어서 1만원 벌려는 자세와 의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이 대표가 지난해 11월 미국 법인 네옥바이오를 설립한 것도 이 때문이다. 네옥바이오는 이중항체 ADC(항체-약물 접합체)의 글로벌 임상 개발을 전담하기 위해 설립된 자회사다. 현재 회사가 개발하고 있는 주요 신약후보물질 임상을 진행을 맡고 있다.
글로벌 신약이 미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고 상업화에 성공하려면 다양한 인종을 대상으로 한 임상 데이터가 필수다. 한국보다 미국에서 글로벌 임상을 진행하는 것이 더 유리한 이유다. 미국 현지 전문 인력을 활용해 임상에도 더욱 속도를 낼 수 있다.
이 대표는 "미국 자회사를 통해 신약 후보 물질에 대한 임상을 끝까지 밀고 나감으로써 제대로 검증된 파이프라인을 여럿 확보하고, 이를 통해 최종적인 인수·합병(M&A)이나 기술 물질 매각 등을 노리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기술 이전을 넘어 신약 물질을 수출하는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뜻이다.
이 대표는 서울대 생물교육학과, 서울대 대학원에서 동물발생학 석사 학위를 받고,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분자생물학·세포생물학·발생생물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 의대 연구원 등을 거쳐 옛 노바티스인 카이론, 아스트라제네카, 제넨텍, 엑셀릭시스에서도 일했다. 2013년엔 한화케미칼에서 바이오 사업을 총괄했다. 이후 한화가 사업을 중단하자 2016년 항체 치료제 연구·개발에 중점을 둔 에이비엘바이오를 설립했다. 올해로 회사 설립 10년을 넘긴 셈이다.
이 대표는 "지금까지 돌아보면 2018년 상장 이후 매 순간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국내 바이오텍들은 투자자들로부터 기술 이전을 해야 한다는 압박을 적지 않게 받는다. 그렇지만 임상 2상을 넘어설 때까지 기다린다면 더 큰 자산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다들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최근 미국 바이오 기업 노바브릿지 바이오사이언스와 공동 개발 중인 이중항체 면역항암제 'ABL11′이 FDA로부터 패스트트랙을 지정받았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임상 2상 외에도 임상 3상을 조만간 동시에 진행할 예정이다.
이 대표는 "임상 3상까지 간다는 것은 많은 위험 요소를 안고 가는 것이다. 결과에 따라 회사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신약후보물질을 마지막까지 우리가 직접 검증·개발할 수 있다는 것은 또한 설레는 일이기도 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