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변화가 꼭 통계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농산물 가격이 뛰고, 물류 흐름이 막히고, 산업 현장이 멈춰서는 이상 신호는 오히려 공식 통계보다 지표면에서 먼저 포착된다. 위성 영상은 이러한 변화를 가장 넓은 시야에서 포착할 수 있는 데이터다. 조선비즈는 우주 인공지능(AI) 솔루션 기업 텔레픽스와 함께 위성 영상과 경제 데이터를 교차 분석해 주요 경제 이슈의 출발점과 시장 파급 과정을 살펴보고, 기존 통계가 놓치기 쉬운 현장의 변화를 진단한다.[편집자주]
2024년 9월, 추석 연휴가 지나자 시장에는 한 포기에 2만원짜리 배추가 등장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집계한 평균 소매가가 1만원에 육박했고, 산지 상황을 먼저 반영하는 도매가격은 평년의 두 배 수준으로 뛰었다. 평소 식탁에 빠지지 않던 배추는 며칠 새 '금배추'가 됐다.
배추값 급등의 출발점은 한여름에도 배추가 자라는 강원 고랭지 밭이다. 태백·정선·평창 등 해발 600m 이상 고지대는 평지의 배추밭이 폭염에 약해지는 7~8월에도 비교적 서늘하다. 봄배추 출하가 끝나고 가을 김장배추가 나오기 전, 이곳에서 나는 고랭지 배추(여름배추)가 국내 배추 공급의 빈틈을 메운다.
하지만 산지에서 작황이 나빠지거나 재배면적이 줄면, 부족한 물량은 곧바로 가격에 반영된다. 배추는 김치와 식당 반찬, 급식 재료에 빠지기 어려워 수요가 쉽게 줄지 않는 탓이다.
그렇다면 배추값이 오를지 내릴지를 수확 전에 확인할 수 있을까. 강원 고랭지 배추 주산지를 촬영한 위성영상에서 그 가능성을 살펴봤다. 위성은 밭을 하나하나 조사하지 않아도 넓은 지역의 식생 변화를 반복적으로 관측할 수 있다. 배추가 심긴 면적이 줄었는지, 생육 상태가 예년과 다른지, 특정 시기에 식생 신호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데이터로 남긴다.
◇ 풍작과 흉작의 차이, 위성 식생지수에서 나타났다
이번 분석에는 유럽우주국(ESA)이 운영하는 센티넬-2(Sentinel-2) 위성영상을 활용했다. 센티넬-2는 지표면을 약 10m 해상도로 관측하고, 같은 지역을 수일 간격으로 반복 촬영한다.
강원 평창군 방림면의 한 배추밭은 2019년과 2024년 위성영상에서 뚜렷하게 다른 모습을 보였다. 풍작이었던 2019년 영상에서는 밭 전반에 비교적 고른 식생 신호가 나타났다. 반면 흉작이었던 2024년 영상에서는 생육이 약하거나 불균일한 구역이 더 많이 확인됐다.
위성은 식물의 생육 상태를 빛의 반사 특성으로 읽는다. 건강하게 자라는 식물은 특정 파장의 빛을 강하게 반사하는데, 위성은 이 정보를 바탕으로 수치를 계산한다.
대표적인 지표가 정규식생지수(NDVI)다. NDVI는 식물이 얼마나 활발하게 자라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식생지수로, 값이 높을수록 생육이 왕성하다고 볼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배추가 6월에 심긴 뒤 7~8월에 빠르게 자라고, 9월 초 결구(속이 꽉 차는 현상)에 들어가는 생육 리듬을 따라 식생지수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함께 봤다.
강원 고랭지 배추 주산지를 해마다 분석한 결과, 위성에 잡힌 배추밭 면적은 실제 생산량과 강하게 맞물렸다. 2019~2024년 위성 탐지면적과 강원 고랭지 배추 생산량의 상관계수는 +0.91이었다. 상관계수는 두 지표가 함께 움직이는 정도를 나타낸다. +1에 가까울수록 한쪽이 늘 때 다른 한쪽도 함께 늘어나는 관계가 강하다.
◇ 배추밭 면적 변화는 가격 흐름과도 맞물려
위성으로 추정한 배추밭 면적은 시장 가격과도 연결됐다. 가락시장의 9월 도매가격과 비교하면, 위성 탐지면적이 넓은 2021년에는 가격이 낮았고 면적이 좁은 2024년에는 가격이 높았다.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실제 강원 고랭지 배추 생산량은 2017년 약 22만7000t에서 2024년 14만9000t으로 줄었다. 8년 만에 34.8% 감소한 것이다. 같은 기간 재배면적도 4733㏊(헥타르)에서 3483㏊로 26.4% 줄었다.
생산량이 가장 많았던 2021년의 연평균 배추 도매가는 ㎏당 809원이었지만, 생산량이 가장 적었던 2024년에는 ㎏당 1775원으로 두 배에 달했다. 2017~2024년 강원 고랭지 배추 생산량과 도매가의 상관계수는 -0.88이었다. 생산량이 줄어든 해에 가격이 오르는 관계가 강했다는 의미다.
생산량 감소의 원인을 보면 재배면적이 줄어든 영향이 가장 컸다. 2017년부터 2024년까지 생산량 감소분 가운데 약 72%는 재배면적 감소로 설명됐다. 나머지 28%는 일정 면적에서의 수확량(단수)이 감소한 영향이었다. 재배면적과 생산량의 상관계수는 +0.97로 매우 높았다.
다만 국가데이터처 집계상 2023년 강원 고랭지 배추 재배면적은 3774㏊로, 2022년 4069㏊보다 줄었고, 생산량도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런데 위성 분석에서는 2023년 배추밭 면적이 2022년보다 넓게 탐지됐다.
가격 흐름은 위성 분석에 더 가까웠다. 가락시장 9월 도매가를 보면 2022년 ㎏당 3349원이던 배추 가격은 2023년 ㎏당 1957원으로 크게 낮아졌다. 위성영상이 사후 집계되는 통계와 함께 가격 흐름을 해석하는 보조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 더워지는 여름, 더 중요해지는 조기 관측
고랭지 배추밭이 줄어드는 배경에는 기후 변화가 있다. 배추는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작물이다. 여름철 기온이 오르면 재배할 수 있는 지역이 줄고, 병해충이나 생육 부진 위험도 커진다.
2017~2024년 데이터를 보면 생육기인 6~9월 평균기온이 높은 해일수록 재배 면적과 단수가 모두 낮아졌다. 2024년 강원 고랭지 배추 생육기 동안의 평균기온은 21.4도로 분석 기간 중 가장 높았고, 같은 해 재배면적은 3483㏊, 단수는 10a(아르, 1a는 100㎡)당 4264㎏으로 모두 8년 중 최저 수준이었다.
화석연료 사용이 계속되는 상황을 가정하면 장기 전망도 좋지 않다. 농촌진흥청 예측에 따르면, 고온난화 시나리오에서는 고랭지 배추를 기르기에 알맞은 지역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 현재 약 1만4800㏊ 수준인 재배 적지는 2030년대 현재 대비 91% 감소한 1261㏊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2060년대에는 44㏊까지 감소할 수 있다는 예측도 제시됐다. 현재 대비 99.7% 감소한 수준이다.
고랭지 배추의 가격은 도매시장에 물량이 출하된 뒤 본격적으로 움직인다. 그보다 앞서 산지에서는 재배면적과 생육 상태의 변화가 진행된다. 기후 변화로 고랭지 배추를 재배하는 여건이 불안정해질수록, 산지 변화를 반복적으로 관측하는 데이터의 필요성도 커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