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연구진이 앤 불린 초상화를 X선으로 조사한 결과 밑그림을 그린 후 나중에 두 손과 붉은 장미를 또렷하게 보이도록 다시 구성한 흔적을 발견했다. 이 초상화는 엘리자베스 1세 때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엘리자베스 1세가 어머니 앤 불린을 마녀 취급하며 "오른손 손가락이 6개였다"고 모함했던 정적에게 반격을 가한 것으로 해석된다. /영 히버 성

1536년 5월 19일 영국 런던탑에서 왕비가 참수됐다.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이자 나중에 영국의 황금기를 가져온 엘리자베스 1세의 어머니인 앤 불린이다. 죄목은 간통과 근친상간, 반역죄까지 죄 중의 죄는 다 붙었다. 앤 불린은 온갖 중죄를 뒤집어썼지만, 사형장에서는 오히려 왕에게는 잘못이 없다며 충성을 다해 섬겨달라고 부탁했다.

왕은 냉담했다. '자비'는 화형 대신 참수로 감형하고, 도끼 대신 칼로 고통 없이 죽이라는 데 그쳤다. 처형 후 왕은 바로 다른 왕비를 맞았다. 재위 기간이 3년이 채 되지 않아 '1000일의 왕비'로 불린 앤 불린의 이름은 왕실에서 금기어가 됐다. 생전 초상화 하나 남지 않았다. 이제 과학이 490년 만에 비운의 왕비 앤 불린의 얼굴을 찾아냈다. 가냘픈 모습이지만 당당하게 정면을 바라보는 모습이었다.

왼쪽은 2008년 영화 '천일의 스캔들'에서 앤 불린 역으로 나온 여배우 나탈리 포트먼. 오른쪽은 앤 불린 실물 스케치로 추정되는 그림을 토대로 AI를 활용해 구현한 초상화. /컬럼비아 픽처스·카렌 데이비스

불륜 대신 결혼을 요구한 왕비

헨리 8세와 앤 불린의 만남은 불륜이었다. 헨리 8세는 아라곤의 캐서린(카탈리나)과 결혼하고 딸까지 얻었지만, 이미 앤 불린의 자매인 메리 불린과 정을 통하고 있었다. 메리도 유부녀였다. 왕은 한눈에 반한 앤 불린에게도 정부(情婦)가 돼 달라고 했지만, 앤 불린은 오직 정식 결혼만 받아들이겠다고 맞섰다.

헨리 8세는 결혼을 위해 교황청에 이혼을 요청했다. 첫 번째 왕비인 캐서린은 앞서 요절한 형 아서 튜더와 결혼했었기 때문에 자신과의 결혼이 무효라고 주장했다. 교황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헨리 8세는 잉글랜드 교회의 분립을 선언했다. 앤 불린이 영국 국교회를 탄생시키는 데 촉매 역할을 한 것이다.

소설가이자 역사학자인 카렌 데이비스는 영국 역사를 뒤흔든 앤 불린의 생전 모습을 추적했다. 영국 왕실 소장품 중에는 '앤 불린 왕비(Anna Bollein Queen)'라고 적힌 그림이 있다. RCIN(왕실 소장품 식별 번호) 912189인 이 그림은 헨리 8세의 궁정 화가였던 한스 홀바인이 남긴 초상화용 스케치였다. 당시 화가들은 연필이나 분필로 종이에 스케치한 다음 목판에 그대로 옮겨 초상화를 그렸다.

그런데 스케치 속 왕비의 모습은 기록과 달랐다. 앤 불린은 가냘픈 얼굴에 검은 머리칼을 가졌다고 했는데 스케치 속 여성은 금발에 턱이 두 겹으로 보일 만큼 통통한 모습이었다. 데이비스는 연구비를 벌기 위해 청소 일을 하던 중 한 고객의 소개로 하산 우가일 브래드퍼드대 시각컴퓨팅센터장을 소개받았다. 역사학에 AI(인공지능)가 결합한 순간이었다.

우가일 교수는 미국 스탠퍼드대의 AI 연구자인 데이비드 스토크 교수와 함께 홀바인의 다른 초상화 스케치들을 AI로 분석했다. 눈 사이 거리나 코의 형태, 입술의 너비, 턱선 등 얼굴의 주요 특징을 수치로 바꿔 비교했다. 스마트폰이나 공항 출입국의 안면 인식에 쓰는 방식이다. AI는 이미 사람 얼굴 사진 1500만장을 학습한 상태였다.

왼쪽은 '앤 불린 왕비'라고 적힌 그림. 헨리 8세 때 궁정 화가가 남긴 초상화용 스케치다. 하지만 이 인물은 실제로 앤 불린의 어머니로 추정된다. AI 분석 결과 신원 미상이던 그림(가운데) 속 인물이 앤 불린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헨리 8세의 다른 궁정 화가가 그린 13세 무렵 엘리자베스 1세의 초상화(오른쪽). AI 분석에서 가운데 그림 속 인물과 모녀 관계일 가능성이 크다고 나왔다./영 왕실 소장품 재단

AI가 밝힌 왕가의 인척 관계

연구진은 AI로 홀바인이 그린 왕실 인물들과 앤 불린 일가의 그림을 대조했다. AI 분석은 기존에 앤 불린으로 알려진 스케치가 그의 어머니 엘리자베스 하워드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대신 신원 미상이던 RCIN 912190 스케치 속 인물이 앤 불린일 가능성도 함께 커졌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신원 미상 인물은 기록처럼 검은 머리에 날씬한 모습이었다. 또 다른 궁정 화가인 윌리엄 스크로츠가 그린 13세 무렵 엘리자베스 1세의 초상화와 76.9% 유사했다. 마지막으로 나중에 엘리자베스 1세 재위 시절 그려진 앤 불린의 다른 초상화와도 75.5% 유사했다. 연구진은 이와 같은 삼각 검증으로 신원 미상 인물이 앤 불린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같은 방법으로 '레이디 보'로 알려진 RCIN 912247 속 인물이 앤의 자매인 메리일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번 연구 결과는 지난 3월 국제 학술지 'npj 유물 과학'에 실렸다. 물론 AI 판정이 100% 옳다고는 할 수 없다. AI가 사전 학습한 데이터가 사진이어서 초상화와 같은 미술 작품에 곧바로 대입하기 어렵다는 반론도 있었다. 하지만 연구진은 AI의 판정 결과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또 있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홀바인의 스케치 81점 중 인물 이름이 동시대 자료로 확실하게 확인된 것은 12점에 불과했다. 초상화에 남은 '앤 불린'이라는 이름도 나중 소장자가 임의로 적어 넣었을 수 있다는 말이다.

분석 대상이 완성된 초상화가 아니라 밑그림인 스케치라는 점도 설득력을 높였다. 초상화는 나중에 옷이나 장신구, 주변 정물 등으로 다른 이미지를 부여할 수 있지만, 스케치는 밑그림이라는 점에서 생전 얼굴 구조를 비교하기에 더 낫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스케치에 핀을 꽂은 흔적이나 접힌 선 등이 남았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미적인 목적으로 그린 그림이 아니라 얼굴 구조를 정확하게 목판에 옮기기 위한 도구였다고 설명했다.

AI는 이전에도 16세기 그림 판독에 활용됐다. 우가일 교수는 2023년 라파엘로의 '드 브레시 톤도(de Brécy Tondo)' 그림을 AI로 분석해 진품일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있는 장면을 그린 이 그림은 라파엘로가 1512년 완성한 걸작 '시스티나의 마돈나'와 화풍이 흡사해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때 원작을 모방한 그림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하지만 우가일 교수는 AI 안면 인식 기술로 분석해 이 그림이 라파엘로가 그린 작품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발표했다.

엘리자세비 1세 재위기인 1583년쯤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앤 불린의 '장미' 초상화. X선으로 조사해 오른팔 아래에 그림의 구도를 보여주는 삼각형 형태를 확인했다./영 히버성
영국 과학자들은 앤 불린의 장미 초상화를 X선으로 조사해 오른팔 아래에 그림의 구도를 보여주는 삼각형 형태를 확인했다./영 히버성

초상화 속 왕비가 장미꽃을 든 이유

헨리 8세 사후 잉글랜드의 왕좌는 엘리자베스 1세의 이복 남동생인 에드워드 6세가 6년, 이복 언니인 메리 1세가 4년 차지했다. 각각 헨리 8세의 세 번째 왕비, 첫 번째 왕비가 낳았다. 그사이 엘리자베스 1세는 사생아 취급까지 받았다. 수모를 견딘 끝에 1558년 엘리자베스 1세가 왕위에 올랐지만, 반대자들은 여전히 어머니 앤 불린을 폄훼하며 공격했다. 한 가톨릭 사제는 "앤 불린은 황달에 걸린 듯 칙칙한 안색에 윗입술 아래로 튀어나온 이가 하나 있었고, 오른손에는 손가락이 여섯 개였다"고 썼다. 마녀 취급을 한 것이다.

헨리 8세는 앤 불린 참수 이후 왕궁에서 그녀의 흔적을 모두 지웠다. 생전에 그려진 초상화가 한 점도 남지 않았다. 엘리자베스 1세는 어머니의 초상화를 만들어 정적에게 반격했다. 바로 오른손에 장미꽃을 든 앤 불린의 초상화이다. 이 그림은 앤 불린이 어린 시절을 보낸 히버 성 소장품이다. 지난 2월 히버 성과 케임브리지대 해밀턴 커 연구소는 장미꽃 초상화에 정적을 누르려는 엘리자베스 1세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발표했다.

먼저 목판의 나이테를 조사해 장미 초상화의 연대를 엘리자베스 1세 치세이던 1583년으로 추정했다. 이 추정대로라면 장미 초상화는 현존하는 앤 불린 초상화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연구진은 장미꽃 초상화를 X선으로 조사해 오른팔 아래에 그림의 구도를 보여주는 삼각형 형태를 확인했다.

당시 왕실 초상화는 대부분 손을 드러내지 않는 모습이었다. 연구진은 X선에 드러난 삼각형이 장미꽃 초상화 역시 처음에는 기존 방식으로 밑그림을 그리다가 나중에 두 손과 붉은 장미를 화면에 또렷하게 보이도록 다시 구성한 흔적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의 주장에 따르면 엘리자베스 1세는 어머니 오른손 손가락이 다섯 개임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초상화로 정적의 선동에 맞섰다. 요즘 말로 하자면 초상화 정치를 한 셈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헬렌 해리슨은 지난해 출간한 저서 '앤 불린의 수많은 얼굴들'에서 히버 성의 장미꽃 초상화를 그렇게 설명했는데, 이번 과학 분석은 그 해석을 뒷받침하는 물증을 제시했다.

앤 불린은 당대에 왕실을 파탄 낸 요부로 비난받았으나, 현대에 들어 가부장적 사회에 저항하고 영국의 종교 개혁을 이끈 정치적 희생양으로 재평가됐다. 최근 TV 드라마나 영화에 그려진 모습도 그렇다. 앤 불린의 얼굴은 당대 권력에 의해 철저히 지워졌지만, 스케치에 남은 선과 목판 속 밑그림은 그녀의 진면목을 다시 역사 앞으로 불러냈다. 과학이 초상화의 실체를 밝혀내며 보여준 것은, 어쩌면 권력이 아무리 숨기려 해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진실의 힘인지도 모른다.

참고 자료

npj Heritage Science(2026), DOI: https://doi.org/10.1038/s40494-026-02456-0

Hever Castle(2026), https://www.hevercastle.co.uk/news/secrets-beneath-hevers-rose-portrait/

A Raphael Madonna and Child Oil Painting(2024), DOI: https://doi.org/10.1007/978-3-031-72271-4_4

npj Heritage Science(2023), DOI: https://doi.org/10.1186/s40494-023-010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