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이온 킹'에서 미어캣 티몬과 혹멧돼지 품바는 늘 붙어 다닌다. 생김새도, 먹이도, 살아가는 방식도 다르지만 위험한 순간엔 서로를 돕는다. 만화영화 속 이야기처럼 보였던 이런 관계가 실제 야생에서도 여러 사례로 확인됐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자연에도 종을 넘어선 팀워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영국 옥스퍼드대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대 등이 참여한 국제 연구팀은 서로 다른 동물 종 사이 협력 관계와 의사소통 방식을 종합 분석한 리뷰 논문을 최근 국제학술지 '동물 행동'에 발표했다. 생물학, 인류학, 언어학 등 여러 분야 연구자 58명이 참여해 조류, 어류, 곤충류, 포유류 등에서 확인된 종간 협력 사례군 12건을 정리했다.
◇혹멧돼지가 몸 눕히면, 몽구스가 진드기 떼내
대표적인 사례가 혹멧돼지와 줄무늬몽구스다. 혹멧돼지는 몸에 붙은 진드기와 기생충을 떼기 위해 몽구스에게 몸을 맡긴다. 무릎을 꿇거나 옆으로 누워 청소를 받을 준비가 됐다는 듯한 자세를 취한다. 몽구스는 혹멧돼지 몸에 붙은 진드기를 먹는다. 혹멧돼지는 몸을 깨끗이 하고, 몽구스는 먹이를 얻는다. 티몬과 품바 같은 관계가 만화적 상상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아프리카에 사는 큰꿀길잡이새는 사람과 협력한다. 이 새는 특유의 울음소리로 사람을 벌집까지 안내한다. 사람은 벌집에서 꿀을 얻고, 새는 남은 밀랍을 먹는다. 사람도 특정한 소리로 새를 불러낼 수 있다. 새는 이 소리에 반응해 길잡이 역할을 한다. 서로 다른 종이 소리로 약속을 맞추는 것이다.
바닷속에서도 협력은 벌어진다. 청소놀래기 같은 작은 물고기는 큰 물고기 몸에 붙은 기생충을 떼어 먹는다. 큰 물고기는 입을 벌리거나 몸을 세우는 자세로 청소를 요청한다. 청소 물고기는 선명한 색과 독특한 움직임으로 자신이 먹이가 아니라 청소 서비스를 제공하는 협력 상대라고 알린다.
◇'포식자' '사기꾼'도 신호로 확인
물론 야생에는 협력 관계보다 조심해야 할 관계가 더 많다. 상대는 협력자가 아닌 포식자일 수도 있고, 이득만 챙기고 대가는 돌려주지 않는 사기꾼일 수도 있다. 그래서 동물들은 신호를 주고받으며 상대가 믿을 만한지 확인한다.
가짜 청소물고기가 대표적이다. 일부 물고기는 진짜 청소놀래기처럼 생긴 검은 줄무늬와 날렵한 몸매를 흉내 내면서 청소를 해줄 것처럼 속인다. 큰 물고기가 청소를 기대하고 다가오면, 몸을 청소해주는 대신 물어뜯는다. 이 때문에 큰 물고기들도 상대의 신호를 확인한다. 청소를 요청하는 자세를 취한 뒤 반응을 살피고, 물어뜯기면 몸을 움찔하거나 상대를 쫓아내 더 이상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
문어는 물고기들과 함께 사냥하다가, 먹이 찾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 물고기를 펀치하듯 밀쳐낼 수 있다. 연구팀은 이런 행동이 협력하지 않는 상대를 단속하는 신호일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야생의 팀워크 관계에도 무임승차는 환영받지 못하는 셈이다.
◇개미 보디가드, 돌고래 파트너
일부 나비 애벌레는 개미를 보디가드처럼 쓴다. 애벌레는 화학 신호와 진동 신호를 내 개미가 자신을 먹지 않고 보호하게 만든다. 개미는 애벌레를 지키고, 애벌레는 개미에게 먹이가 될 수 있는 분비물을 제공한다. 눈에 보이는 색깔이나 몸짓뿐 아니라 냄새와 진동도 협력의 언어가 된다.
사람과 돌고래가 함께 고기를 잡는 사례도 있다. 돌고래는 물고기 떼를 몰아 어부 쪽으로 보낸다. 어부는 돌고래의 움직임을 보고 그물을 던질 시점을 판단한다. 일부 어부는 고기를 잘 몰아주는 돌고래를 생김새와 행동으로 알아보고, 같이 협력하기를 선호한다고 한다. 바다에도 '단골 파트너'가 있는 셈이다.
딱총새우와 망둑어도 짝을 이룬다. 새우는 굴을 파 은신처를 제공하고, 망둑어는 밖에서 위험을 감시한다. 새우는 더듬이로 망둑어와 접촉을 유지하고, 망둑어는 꼬리 움직임 등으로 위험을 알린다. 서로 잘하는 일이 달라 협력이 가능해진다.
자연은 약육강식의 세계로만 묘사되곤 하지만, 이번 연구는 야생이 경쟁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연구진은 "서로 다른 종이더라도 상대의 소리, 몸짓, 냄새, 진동 같은 신호를 읽고 행동을 맞춘다"며 "한쪽은 먹이나 보호를 얻고, 다른 쪽은 청소나 안내 서비스를 제공하는 협력 관계가 가능한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