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의 도움을 받아 일을 쉽게 처리할수록, AI 없이 스스로 일하는 능력은 오히려 약해지는 '탈(脫)숙련화(디스킬링·deskilling)'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AI에 의존할수록 인간의 실무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확인된 셈이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18일 이와 같은 내용의 논문들을 소개했다. 먼저 폴란드 실레지아 아카데미와 노르웨이 오슬로대 등 국제 공동 연구팀은 대장내시경을 2000건 이상 시행한 숙련된 의사 19명의 검사 결과를 분석했다. 용종이 의심되는 부위를 표시하는 AI의 도입 전후로, 의사들이 AI 없이 시행한 검사의 선종 발견률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비교한 것이다. 선종은 대장암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있는 용종의 한 종류로, 발견률은 의사의 탐지 능력을 평가하는 지표로 통한다.
분석 결과 AI 도입 전 3개월 동안에는 검사 795건 가운데 28.4%에서 선종이 한 개 이상 발견됐다. 그러나 AI 도입 이후 3개월 동안 AI 기능을 끄고 시행한 검사 648건에서는 선종 발견률이 22.4%로 낮아졌다. 6%포인트가 떨어진 것으로, 통계적으로도 유의미한 차이였다. 연구팀은 "지속적으로 AI에 노출되면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고, AI 없이 판단해야 할 때 동기와 집중력, 책임감이 떨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AI 의존에 의한 디스킬링은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나타났다. AI 기업 앤스로픽 연구팀은 개발자 52명을 두 집단으로 나눈 뒤, 한쪽에는 AI의 도움을 받아 코딩 과제를 수행하게 하고 다른 쪽에는 AI 없이 과제를 해결하게 했다. 과제가 끝난 뒤 두 집단 모두 AI를 사용할 수 없는 상태에서 새로 배운 개념과 코드 해석, 오류 진단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을 치렀다.
그 결과 AI 사용 집단의 평균 정답률은 약 50%에 그친 반면, AI를 사용하지 않은 집단은 약 67%로 나타났다. 특히 코드가 작동하지 않는 원인을 찾아내는 디버깅(debugging) 문제에서 두 집단의 격차가 가장 컸다. AI를 이용한 이들은 오류가 생겼을 때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는 충분히 익히지 못했다는 것이다.
기술이 인간의 특정 능력을 약화한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GPS(위성 위치 정보 시스템)가 보편화되면서 사람들이 길을 기억하는 능력이 떨어진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정보 해석과 추론 등 여러 인지 활동을 대신하는 생성형 AI는 기존 자동화 기술보다 영향 범위가 훨씬 넓다는 평가다.
특히 경력이 짧은 초보자가 반복 작업과 시행착오를 AI에 맡기면 숙련자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기본기를 쌓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장은 AI로부터 숙련자의 능력을 빌린 것처럼 높은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지만, AI가 사라지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