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제비꽃이 씨앗을 하나씩 차례로 튕겨내는 원리를 밝혀냈다. 열매 꼬투리가 마르며 안쪽으로 접히는 과정에서 힘이 특정 위치에 집중되고, 이 힘의 중심이 이동하면서 씨앗을 순서대로 밀어내는 방식이다. 연구진은 이 원리가 향후 상처 봉합 장치나 유연 로봇 설계에도 활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현유봉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김호영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 정소현 디지스트 로봇 및 기계전자공학과 교수 공동 연구진이 제비꽃 열매 꼬투리의 구조를 분석해 이 같은 종자 방출 원리를 규명했다고 19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이날 게재됐다.
제비꽃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식물이지만, 씨앗을 퍼뜨리는 방식은 꽤 독특하다. 많은 식물은 열매가 터질 때 씨앗을 한꺼번에 사방으로 흩뿌린다. 반면 제비꽃은 길쭉한 주머니 모양의 열매 껍질인 '꼬투리'가 마르면서 안쪽으로 오므라드는 힘을 이용해 씨앗을 하나씩 튕겨낸다.
이때 씨앗을 차례대로 발사하려면 단순히 강한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씨앗이 놓인 위치에 맞춰 힘이 작용하는 지점도 함께 이동해야 한다. 로봇공학에서는 이런 움직임을 만들기 위해 보통 모터, 센서, 제어 장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제비꽃은 별도의 장치 없이 꼬투리의 모양과 접히는 방식만으로 이를 구현한다.
연구진은 제비꽃 꼬투리가 마르면서 지퍼가 닫히듯 순차적으로 접히는 움직임에 주목했다. 연구진은 이를 '지퍼링(zippering)' 동작으로 설명했다. 꼬투리에는 접힘을 유도하는 부분과, 씨앗에 직접 힘을 전달하는 얇은 막 구조가 함께 존재한다. 꼬투리가 접히면 이 막을 따라 힘이 씨앗이 있는 지점에 모이고, 그 지점이 앞으로 이동하면서 씨앗을 차례로 밀어낸다. 마치 손가락으로 앞쪽 씨앗부터 하나씩 꼬집어 튕겨내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실제 제비꽃 시료와 이를 본뜬 인공 장치를 비교해 꼬투리 단면의 모양도 분석한 결과, 제비꽃 꼬투리의 단면은 힘을 효과적으로 모을 수 있는 반원형 구조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꼬투리 양끝의 모양과 기하학적 조건이 맞물리면서, 접힐 때 생기는 힘이 흩어지지 않고 씨앗이 있는 곳으로 집중되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번 사례를 '물리적 지능'의 사례로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물리적 지능이란 복잡한 전자 장치나 계산 없이도 물체의 형태, 재료, 움직임 자체가 기능을 수행하도록 설계된 특성을 뜻한다. 향후 전선이나 배터리, 모터를 최소화하면서도 특정 지점에 힘을 집중해야 하는 상처 봉합 패치, 조직을 부드럽게 잡거나 절제하는 생체모사 장치 등에 활용할 수 있다.
연구진은 "제비꽃은 최소한의 자원으로 효율적으로 힘을 전달하도록 꼬투리 구조를 진화시켜 왔다"며 "복잡한 장치 없이 디자인만으로 정교한 움직임을 구현하는 소프트 소재와 의공학 분야 연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참고 자료
Science(2026),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ed2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