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V(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의 폐(肺)를 다른 HIV 감염자에게 이식하는 수술이 전세계 처음으로 성공했다. 사진은 수술을 집도한 NYU 랭건 병원의 스테파니 창 박사. /NYU 랭건

HIV(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의 폐(肺)를 다른 HIV 감염자에게 이식하는 수술이 전 세계 처음으로 성공했다.

미국 NYU 랭건 병원 이식연구소는 HIV 감염자의 폐를 또 다른 HIV 감염 환자에게 이식하는 수술을 전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고 19일(현지 시각) 발표했다. 이번 수술은 미 식품의약국(FDA)의 승인 아래 진행됐다.

◇HIV 감염자끼리 폐 이식 처음으로 성공

수술을 받은 환자의 이름은 버트런드 넬슨(Nelson·56). 26년 전 HIV와 사르코이드증에 감염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사르코이드증은 폐와 간 같은 여러 장기에 염증성 결절이 생기는 질환이다. 치료를 거듭하면서 사르코이드증은 점차 좋아졌으나, 2021년 중증 폐렴에 걸렸고 사르코이드증도 다시 심해졌다. 나중엔 폐는 물론이고 간도 망가지기 시작했다. 산소 호흡기 없이는 숨 쉬기 힘든 상태가 됐다. 장기 이식 수술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넬슨은 2025년 HIV 감염인의 장기 이식을 허용하는 'HOPE(HIV Organ Policy Equity)' 연구 프로그램에 이름을 올렸다. 연구팀은 고심했다. HIV 감염인에게 심장이나, 신장, 간을 이식한 사례는 있었지만 폐를 이식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폐 이식을 집도한 스테파니 창(Chang) 박사는 "전례가 없는 수술을 시도하려면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감사하게도 넬슨은 용감한 환자였다"고 했다.

수술은 지난 3월 21일 이뤄졌다. HIV 감염 기증자의 폐를 처음으로 이식했고, 동시에 간 이식 수술도 같이 진행했다. 의료진은 "역사적인 수술이었고 성공적으로 잘 마쳤다"고 했다. 수술을 마친 뒤 넬슨은 이제 산소호흡기 없이 숨을 쉴 수 있다. 그는 "이식 수술을 받지 못했더라면 건강을 되찾기 어려웠을 것"이라면서 "80세가 넘은 어머니에게 더욱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요즘 재활 치료를 열심히 받고 있다"고 했다.

◇기술의 발달로 가능해진 HIV 감염인의 장기 이식

HIV 감염인의 장기 이식이 허용된 것은 2013년 HOPE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면서부터다. 과거엔 HIV 감염인의 장기를 이식할 경우 바이러스가 퍼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장기 기증을 금지했으나, 1990년 중반부터 HIV 증식을 강력하게 억제하는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제(ART)가 도입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 약을 꾸준히 복용하면 혈액 내 바이러스가 거의 검출되지 않을 정도로 줄어들고 기대 수명도 일반인과 비슷한 수준까지 늘어난다. 현재는 하루 한 알 복용하는 약과 장기 지속형 주사제까지 개발됐다. HIV가 이젠 관리 가능한 만성 질환으로 여겨지는 이유다.

HIV 감염인의 장기 이식이 처음으로 이뤄진 것은 2016년이다. 당시 미국 존스홉킨스 의대 연구진은 HIV 감염인 기증자의 신장과 간을 각각 다른 HIV 감염 환자에게 이식하는 수술을 전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이후 HIV 감염자끼리의 신장, 간 이식 사례가 이어졌고 최근엔 심장 이식까지 확대됐다.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를 병행하면 이식이 안전하게 이뤄진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이식 대상 장기가 점차 늘어난 것이다.

폐는 장기 중에서도 이식 난도가 가장 높은 쪽에 속한다. 폐는 심장과 간과 달리 외부 공기와 직접 접촉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세균·바이러스 감염에 더 취약하다. 이식 후에도 거부 반응과 감염이 생길 위험도 높다. 실제로 장기 이식 분야에선 폐 이식 생존율이 신장이나 간 이식보다 낮은 편이다.

전문가들은 따라서 이번 수술 성공이 HIV 감염인의 폐까지도 이식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하고 있다. 창 박사는 "이번 수술을 통해 HIV 감염 환자의 장기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적합한 장기를 찾을 가능성도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현재 미국의 HIV 감염 환자 수는 약 120만명, 전 세계 HIV 감염 환자는 약 40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질병관리청에 따르면 국내 HIV 감염인은 약 1만7000명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