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3월 11일 규모 9.0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한 지 약 13~15분 뒤, 일본 열도가 다시 한번 동쪽으로 미세하게 움직였다. 이동 폭은 최대 5~6㎜에 불과해 사람이 느낄 수는 없었지만, 일본 전역의 위치 확인 시스템(GPS) 자료와 지진계에는 뚜렷하게 남았다.
최근 이 움직임의 원인이 지구 깊은 곳에서 돌아온 지진파였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박선영 미국 시카고대 교수 연구진은 동일본대지진으로 발생한 S파(전단파)가 수천㎞를 지나 핵 부근까지 내려갔다가 반사돼 다시 지표로 올라왔고, 일본 주변의 판 경계를 동시에 건드렸다는 연구 결과를 19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지구 깊은 곳에서 돌아온 지진파가 판 경계를 다시 활성화한 사례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를 이끈 박 교수는 서울대 에너지자원공학과 출신으로, 2021년 시카고대에 합류했다. 당시 시카고대 역사상 첫 지진학 분야 교수로 임용돼 주목받았다. 박 교수는 지진파가 지구 내부를 어떻게 지나가고, 그 과정이 지표와 판 경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해 왔다.
박 교수가 이번 연구에서 주목한 것은 대지진이 끝난 뒤 10여 분이 지나 일본 전역에 남은 작은 신호였다. 보통 큰 지진 뒤 나타나는 추가 이동은 여진이나 주변 단층의 미끄러짐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이번 신호는 여진이나 추가 파열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박 교수는 "일본 전역에서 나타난 추가 이동은 일반적으로 또 다른 지진과 관련이 있는데, 그 시점과 맞아떨어지는 지진이 없었다"며 "이 움직임은 무엇 때문일까 하는 궁금증에서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ScS파에 주목했다. ScS파는 S파가 지구 내부를 지나 핵과 맨틀의 경계 부근에서 반사된 뒤 다시 지표로 올라오는 지진파다. 연구진은 동일본대지진 자체가 워낙 강력했기 때문에 핵 부근에서 반사돼 돌아온 ScS파에도 일정한 에너지가 남아 있었을 것으로 봤다.
관측 자료도 연구진의 해석을 뒷받침했다. 일본 전역의 관측소에서 ScS파가 뚜렷하게 확인됐고, 곧이어 GPS 자료에서도 동쪽 방향의 계단식 변화가 나타났다. 신호가 한 지역에 그치지 않고 여러 관측소에서 같은 시간대에 확인됐다는 점도 ScS파의 영향이라는 해석에 힘을 보탰다.
박 교수는 "이번 ScS파의 이동 거리는 약 5800㎞로, 거의 지구 반지름에 달한다"며 "핵 부근까지 갔다가 돌아온 지진파는 보통 에너지가 크지 않아 다른 지진을 촉발하기도 어렵다고 알려져 있었고, 사례가 보고된 적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동일본대지진 본진 이후 판 경계의 마찰력이 약화되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 것이라 봤다. 강한 본진이 판 경계를 불안정하게 만든 뒤, 핵 부근에서 반사돼 돌아온 ScS파가 추가 자극으로 작용하면서 일본 주변 판 경계에서 작은 미끄러짐이 동시에 일어났다는 해석이다.
추가로 연구진은 ScS파가 아닌 다른 원인들도 검토했다. 본진 자체의 파열 과정이 뒤늦게 지표 이동을 만들었거나, 대지진 뒤 발생할 수 있는 대규모 해저 산사태가 영향을 줬을 가능성도 따졌다. 하지만 이 원인들은 본진 주변 지역의 움직임을 설명할 수는 있어도, 일본 전역에 걸친 일관된 동쪽 이동은 설명하기 어려웠다.
GPS 자료 처리 과정에서 생긴 인공적인 오류일 가능성도 검토했지만, 이번 신호는 기존에 알려진 오류 패턴과도 달랐다. 무엇보다 독립적인 지진계 관측에서도 같은 시점에 일치하는 신호가 확인돼 단순한 GPS 오류로 보기 어려웠다.
이번 연구는 대지진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예측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 본진이 끝난 뒤에는 보통 여진을 주시하지만, 이번 연구는 지구 내부를 돌아온 지진파가 10분, 20분 뒤 다시 판 경계를 움직일 수 있음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이번에 촉발된 미끄러짐은 이동 폭보다 범위가 이례적"이라며 "전체 길이는 일본 본토 길이와 비슷한 약 3000㎞로, 동일본대지진 본진의 파열 길이보다 6~7배 길고, 2004년 수마트라 대지진 때보다도 두 배 이상 넓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이런 유형의 촉발 현상을 새로운 지진 위험 요인으로 봐야 한다"며 "일본뿐 아니라 알래스카, 남미, 인도네시아처럼 거대 섭입대 지진이 발생할 수 있는 다른 지역에도 적용될 수 있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참고 자료
Science(2026),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ec4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