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치료제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이젠 체중 감량 과정에서 생기는 근육 감소를 막기 위한 신약 후보 물질들이 잇따라 임상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챗GPT 생성 이미지

미국 바이오 기업 '스콜라록'이 개발 중인 신약 후보 물질 '아피테그로맙'의 임상 2상 결과가 지난 8일(현지 시각) '네이처 메디신'에 발표됐다. 체중 감량 과정에서 근육이 손실되는 것을 막는 치료제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연구진은 비만 또는 과체중 성인 102명에게 일라이릴리 비만약 마운자로의 성분인 티르제파타이드를 투여한 뒤, 이들을 51명씩 나누고 각각 아피테그로맙과 위약(가짜약)을 투여했다. 24주 뒤 두 그룹 모두 체중은 비슷하게 줄었지만, 제지방량(체중에서 체지방을 제외한 근육·뼈·장기·체수분 등의 무게) 감소 폭은 달랐다. 아피테그로맙 투여 그룹은 제지방량이 평균 1.6㎏ 줄어든 반면, 위약군은 3.5㎏ 줄었다. 비만약과 아피테그로맙을 함께 투여했을 때 제지방량 손실이 위약군보다 약 55% 적었던 것이다.

비만 치료제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이젠 체중 감량 과정에서 생기는 근육 감소를 막기 위한 신약 후보 물질들이 잇따라 임상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근육이 줄어들면 기초대사량 유지가 어려워지고 혈당 조절 능력도 떨어질 수 있다. 힘들게 체중을 감량해도 근(筋) 손실이 심하면 장기적으로 체중이 다시 늘어날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다. 고령층의 경우엔 낙상 위험이나 신체 기능 저하로도 이어질 수 있다. 최근 체중 감량 못지않게 근육을 보존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 이유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근육 보존 치료제'를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낙점하고 개발에 뛰어드는 이유다.

◇살 빼는 시대에서 '근육 지키는 시대'로

희귀 근육병인 척수성 근위축증 치료제를 개발해온 스콜라록은 체중 감량 때 나타나는 근육 감소를 억제할 수 있는 신약 후보 물질을 개발하고 있다. 근육 성장을 억제하는 단백질인 마이오스타틴이 활성화되는 과정을 차단해 근육량 감소를 억제하는 원리다.

그동안 여러 연구에 따르면, 위고비 등 비만 치료제로 줄어든 체중의 약 25~40%가 제지방량 감소로 나타났다. 예컨대 체중이 20㎏ 줄었다면 이 가운데 5~8㎏가량이 근육과 체수분 등을 포함한 제지방량일 수 있다는 의미다. 이 경우 마이오스타틴 차단제를 함께 사용하면 제지방량 손실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바이오 업계는 기대한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차세대 비만 시장의 패권을 지킬 열쇠가 근육 보존 치료제에 있다고 보고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일라이릴리는 2023년 바이오 기업 '버사니스 바이오'를 약 20억달러에 인수했다. 이 회사가 개발한 '비마그루맙'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다. 비마그루맙은 근육 성장을 억제하는 마이오스타틴 등의 신호를 차단해 근육량을 늘리는 항체 신약 후보 물질이다. 이를 GLP-1 계열 비만 치료제와 함께 투여하면 체지방 감량 효과를 높이면서 근육 손실은 줄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본격화되는 임상 경쟁

버사니스 바이오는 일라이릴리에 인수될 당시 비만 환자를 대상으로 비마그루맙과 세마글루티드(위고비 성분)를 각각 단독 또는 병용 투여하는 임상 2상을 진행 중이었다. 일라이릴리는 이와 별도로 피하 주사형 비마그루맙과 티르제파타이드(마운자로 성분)를 각각 단독 또는 병용 투여하는 임상 2상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 제약사 리제네론도 마이오스타틴을 억제하는 근육 보존 신약 후보 물질 '트레보그루맙'을 개발하고 있다. 임상 2상 중간 분석에서 세마글루티드와 트레보그루맙을 함께 투여하자 세마글루티드 단독 투여 때보다 제지방량 손실이 약 51% 줄었다.

국내 기업도 뛰고 있다. 한미약품은 마이오스타틴을 차단하는 근육 증진 신약 후보물질 'HM500197'을 개발하고 있다. 한미약품은 비만 생쥐를 대상으로 한 전임상에서 비마그루맙보다 골격근량을 더 늘리고 근육 기능도 더 개선했다고 밝혔다. 다만 사람에게서도 같은 효과가 나타날지는 임상시험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