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트로픽 로고./연합뉴스

지난 12일(현지 시각) 미국 정부가 앤트로픽의 최신 인공지능(AI) 모델 '미토스5′와 '페이블5′에 대해 해외 접근 제한 지침을 내리면서 국내 과학기술계에서 소버린 AI(자국이 직접 개발·운영·통제할 수 있는 AI 역량)의 필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최첨단 AI 모델이 국가 전략 자산으로 통제될 수 있다는 점이 현실화됐기 때문이다.

이번 조치는 해당 모델이 프롬프트 통제를 우회하는 이른바 '탈옥'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앤트로픽은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라는 입장을 냈지만, 우선 지침 준수를 위해 모든 접속을 차단했다.

과학기술계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한국에도 직접적인 경고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해외 파운데이션 모델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특정 국가의 정책 판단에 따라 AI 접근권이 제한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파운데이션 모델은 챗봇, 번역, 검색, 코딩, 의료·과학 분석 등 다양한 AI 서비스의 기반이 되는 대규모 범용 모델을 말한다.

최기영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은 "AI를 국가의 중요한 전략 자산으로 여기고 타 국가의 접근을 통제할 수 있다는 우려는 진작에 많이 있었으나 이번 일로 그 경각심이 한층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고성능 AI 모델은 사이버 공격과 방어 양쪽에 모두 활용될 수 있는데, 그런 모델을 한 국가가 독점한다는 것은 다른 국가에는 큰 위협이 아닐 수 없다"며 "이를 계기로 한국도 최고 수준의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고 했다.

다만 독자 모델 개발에는 대규모 연산 자원과 인재, 데이터센터, 투자가 필요하다. 최 전 장관은 "인재, 그래픽처리장치(GPU), 데이터센터, 투자 등 모든 자원이 부족한 한국으로서는 쉽지 않다"며 "산·학·연·관이 더욱 협력해야 한다"고 했다.

의사과학자인 김남국 울산의대·서울아산병원 융합의학과 교수는 이번 조치가 전 세계 AI 개발 경쟁을 더 자극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역설적이게도 장기적으로는 미국 중심의 글로벌 AI 생태계를 약화시키는 부메랑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미국과 중국의 양극 체제를 넘어 소외된 국가들이 결집하는 3극 체제 등의 새로운 평형 상태로 재편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국내의 소버린 AI 개발 전략은 너무 원천기술 구축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며 "일단 안보를 위해서는 성능 좋은 AI를 응용기술 관점에서 개발해야 하고, 빅데이터 발굴, 데이터 활용 및 보상 등에 대한 제도적 지원, AI 인프라 투자 등을 통해 복합적으로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상엽 카이스트 생명화학공학과 특훈교수 겸 연구부총장은 한국이 당장 모든 영역에서 미국 수준의 초거대 모델을 따라잡기보다는, 핵심 분야에서 해외 접속 없이도 작동하는 AI 역량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이 교수는 "궁극적으로는 막대한 자원을 투입해 소버린 AI를 개발하는 것도 좋지만, 자원이 항상 그리 풍부한 것은 아니다"라며 "AI 주도국에서 사용 통제가 들어와도 국방, 의료, 연구, 행정 등에 필요한 모델은 잘 돌아가게 구축해 놓아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