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해양대기청(NOAA)이 열대 태평양에서 엘니뇨 현상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엘니뇨는 적도 부근 태평양의 수온이 상승하면서 전 세계에서 기상 이변을 부르는 현상이다. 엘니뇨가 심해지면 미국과 중국에서는 홍수가 발생하고 동남아시아와 호주, 아프리카는 가뭄을 겪는다. 과학자들은 올해 이란 전쟁으로 비료 공급량이 감소한 상황인데 엘니뇨까지 겹치면 저개발 국가들에서 농업 생산량까지 크게 줄어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NOAA 산하 국립기상청은 "태평양의 관측 구역에서 해수면 온도가 섭씨 2도를 초과할 확률이 63%로 나와 엘니뇨 주의보를 발령했다"고 11일(현지 시각) 발표했다. 기상청은 엘니뇨가 오는 가을에 중등도 또는 강함 단계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엘니뇨는 엘니뇨-남방진동(ENSO)의 전 단계이다. ENSO는 동태평양의 해수면 온도와 대기압 변화가 주기적으로 변동하는 전 지구적 기후 현상을 말한다.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은 주기인 엘니뇨와 낮은 주기인 라니냐로 나뉜다. 각각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라는 뜻의 스페인어에서 유래한 말로, 모두 지구 기후에 큰 영향을 미친다.
◇4월부터 위기 감지, 홍수·가뭄 부를 듯
엘니뇨는 열대 태평양 감시 구역의 3개월 평균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0.5도 이상 높은 상태가 5개월 이상 지속되는 것을 기준으로 한다. 관측 자료에 따르면, 4월 말부터 5월 중순까지 중동부 적도 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엘니뇨 임계점에 근접했다. 기상학자들은 이를 근거로 수개월 전부터 엘니뇨의 재발을 예상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4월 24일 해수면 온도가 급상승하고 있어 5~7월쯤 엘니뇨가 예상된다고 발표했다. 지난 2일에는 6~8월 엘니뇨 현상이 발생할 확률은 80%로 예측된다고 더 구체적인 전망치를 내놓았다. WMO는 엘니뇨가 적어도 11월까지 지속될 확률이 90% 이상이라고 예측했다.
NOAA의 이번 발표는 지난 5월 예상했던 수온 상승 확률의 거의 두 배에 달한다. NOAA는 11월까지 열대 태평양 해수 온도가 2.4도 상승해 열기와 수분을 대기로 방출하고 전 세계 기상 패턴을 교란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엘니뇨는 일반적으로 북반구의 겨울에 가장 강해져 이듬해까지 전 세계에서 기온 상승을 유발한다. 실제로 2023년과 2024년에 발생한 엘니뇨는 기상 관측 사상 가장 더웠던 두 해와 겹쳤다. 과학자들은 2027년이 새로운 폭염 기록을 세울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올해 엘니뇨는 해수면 온도 상승이 섭씨 3도를 넘어 역대 최대 규모에 이를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국제 태평양 연구센터 소장인 말테 슈테커(Malte Stuecker) 하와이대 교수는 "올해 엘니뇨는 유사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며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는 상당히 재앙적인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쟁으로 비료까지 부족해 식량 위기 우려
엘니뇨가 초래한 기상이변은 지역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미국 남부와 동아프리카, 중국 일부 지역에는 홍수가 발생할 수 있는 반면, 인도네시아와 호주, 남아프리카에서는 가뭄과 산불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올해는 전쟁까지 겹쳐 상황이 더 나빠졌다. 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비료 공급이 크게 줄어 저개발 국가들에 식량 위기가 올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선진국의 인도적 지원도 잇따라 삭감됐다.
나이로비에 본부를 둔 기후·에너지 싱크탱크 '파워 시프트(Power Shift)'의 모하메드 아도우 소장은 이날 뉴욕타임스에 "엘니뇨는 '비 내리지 않음, 작물 고사, 식량 가격 상승, 그리고 다시 한번 절벽 끝으로 내몰리는 가정들'을 의미한다"며 "특히 동아프리카에서는 최근 몇 년간 가뭄과 홍수로 이미 큰 타격을 입은 지역 사회에 이 문제가 닥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내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도 엘니뇨로 집중호우 같은 기상이변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나아가 식량 공급에 문제가 생기면서 경제 위기까지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은 "적도 태평양에서 발생한 엘니뇨가 대기 순환을 거쳐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기까지는 수개월의 시차가 있다"며 "엘니뇨 발생으로 지금 당장의 변화보다는 올겨울과 내년 여름 기상 이변에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전 원장은 올겨울은 전국적으로 기온이 평년보다 높아지면서 남쪽에서 습한 공기가 유입돼 강수량(눈·비)이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내년 여름에는 북태평양고기압이 남서쪽으로 처지면서 정체전선이 활성화돼,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기온이 내려가고 집중호우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오재호 나노웨더 대표(부경대 명예교수)는 "올해 엘니뇨는 단순한 기후 현상이 아니라 국가 식량 안보와 경제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위험 요인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식량 자급률이 약 25% 수준에 불과해 밀·옥수수·대두 등 주요 곡물 생산국의 이상 기후는 곧바로 식량 가격 상승과 수입 불안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 대표는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서는 주요 곡물 생산국의 기상·기후 조건과 작황, 수확량 전망을 실시간으로 감시·예측하는 국가 차원의 조기 경보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참고 자료
NOAA(2026), https://www.noaa.gov/news-release/el-nino-forms-expected-to-strengthen-say-noaa-forecasters
WMO(2026), https://wmo.int/resources/publication-series/el-ninola-nina-updates/el-ninola-nina-update-may-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