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서울 중구 더 플라자 호텔에서 만난 룩 피게(Luc Piguet) 클리어스페이스 최고경영자(CEO)./주한스위스대사관

우주 쓰레기가 우주 산업의 새로운 비용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고장 나거나 수명을 다한 위성, 로켓 잔해, 충돌로 생긴 파편이 늘어나면서 정상적인 위성이 부딪혀 손상될 위험이 커지면서다. 작은 파편이라도 초고속으로 움직이면 위성에 치명적인 손상을 줄 수 있다.

한-스위스 혁신주간의 일환으로 열린 '스위스 우주 산업의 날' 세미나 참석차 방한한 룩 피게(Luc Piguet) 클리어스페이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1일 서울 중구 더 플라자 호텔에서 조선비즈와 만나 "우주 쓰레기는 정비 인프라가 없었던 우주 산업의 부작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동차, 항공기, 선박에는 유지보수와 서비스 체계가 있지만 우주 산업에는 그런 인프라가 없었다"며 "우주 산업이 앞으로 커지려면 궤도에서도 정비와 서비스가 가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클리어스페이스는 우주 쓰레기 제거 기술을 포함한 궤도상 서비스를 개발하는 스위스의 우주 기업이다. 2018년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학(EPFL)에서 출발한 스핀오프 기업으로, 유럽우주국(ESA)이 발주한 세계 첫 능동형 우주 쓰레기 제거 임무 '클리어스페이스-1′을 수행하고 있다. 2023년에는 2670만유로(약 471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클리어스페이스의 위성이 수명을 다한 위성을 포획하는 모습의 상상도./클리어스페이스

◇ 시속 2만8000㎞ 우주 쓰레기, 위성 산업 비용 리스크로

피게 CEO는 최근 우주 쓰레기 문제가 주목받는 배경으로 우주 인프라 의존도 증가를 꼽았다. 그는 "매년 인류는 우주 인프라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고, 궤도에 있는 위성의 수도 빠르게 늘고 있다"며 "동시에 우주 쓰레기 문제도 가속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통신, 지구관측, 기상, 안보 등 여러 산업이 위성에 기대는 만큼 궤도 환경 악화는 곧 경제 리스크가 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우주 쓰레기를 제거하는 일은 기술적으로 쉽지 않다. 저궤도 위성이나 파편은 시속 약 2만8000㎞로 움직인다. 게다가 우주 쓰레기는 스스로 자세를 제어하거나 접근하는 위성과 통신할 수 없다. 우주 분야에서는 이런 물체를 '비협조적 물체'라고 부른다.

피게 CEO는 "국제우주정거장(ISS)이나 작동 중인 위성과 도킹할 때는 양쪽이 자세를 제어하고 통신할 수 있다. 레일 위 열차를 연결하는 것과 비슷하다"며 "반면 우주 쓰레기를 잡는 것은 고속도로에서 회전하는 자동차를 붙잡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클리어스페이스는 서비스 위성이 목표물에 접근한 뒤 네 개의 로봇 팔로 우주 쓰레기를 감싸 붙잡는 방식을 개발하고 있다. 먼저 서비스 위성이 목표물의 궤도와 속도에 맞춰 접근하고, 목표물이 회전하거나 흔들리는 정도를 분석한다. 이후 안전한 거리에서 로봇 팔을 펼쳐 물체를 포획하고, 포획한 목표물과 함께 대기권으로 재진입한다. 대기권에 들어가면 서비스 위성과 우주 쓰레기는 마찰열로 대부분 불타 사라진다.

클리어스페이스-1은 이 기술을 검증하는 첫 무대다. 이 임무는 ESA의 소형 위성 '프로바-1(PROBA-1)′을 궤도에서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프로바-1은 2001년 발사된 95㎏급 위성으로, 클리어스페이스는 프로바-1에 접근해 포획한 뒤 대기권으로 유도해 제거하는 기술을 실증할 계획이다. 피게 CEO는 이 임무의 비용 규모를 약 1억2000만유로(약 2115억원)로 설명했다.

피게 CEO는 "우주 환경을 개선하면 모두가 혜택을 보지만 우주 쓰레기 분야는 누구도 먼저 유지비를 내려고 하지 않는 공공재와 비슷하다"며 "누군가는 첫걸음을 내디뎌야 했고 ESA가 그 역할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장기적으로는 민간 위성 사업자가 비용을 내는 시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피게 CEO는 "첫 임무에는 포획 시스템 개발, 우주 환경 검증, 표준 수립 등 반복되지 않는 엔지니어링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며 "같은 기술을 반복 적용하고 발사 비용이 낮아지면 서비스 단가도 내려가고, 수요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구 주위를 돌고 있는 우주 쓰레기./연합뉴스

◇ 우주 쓰레기 다음은 위성 자산관리… "한국 로봇·발사체와 협력"

클리어스페이스가 우주 쓰레기 제거 이후 바라보는 시장은 위성 자산관리다. 위성 자산관리는 임무가 끝난 위성을 안전하게 궤도에서 내려보내고, 고장 난 위성은 수리하며 필요한 경우 수명을 연장해 주는 서비스다.

피게 CEO는 "대형 위성은 4억~5억달러(약 6100억~7627억원)가 드는 자산"이라며 "외부 업체가 위성을 대신 궤도에서 내려보내거나 관리해 준다면 위성 사업자의 비용 구조도 효율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위성 수리도 잠재력이 큰 영역이다. 피게 CEO는 "7억달러(약 1조690억원)짜리 위성이 안테나 하나가 완전히 펼쳐지지 않아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며 "궤도에서 개입해 수리할 수 있다면 막대한 보험 손실과 임무 실패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설계한 것을 다시 설계하지 않고 재사용하면 비용을 낮출 수 있고, 수리를 위해 필요한 발사 비용은 지난 15~20년간 크게 줄어든 데다 차세대 발사체가 등장하면 더 낮아질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위성 사업자가 수명 연장, 궤도 이탈, 수리 서비스를 비용 구조에 자연스럽게 반영하는 시장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피게 CEO는 "클리어스페이스의 궁극적인 목표는 위성 수명 연장이 필요할 때, 궤도에서 수리가 필요할 때 자연스럽게 선택되는 서비스 제공자가 되는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지구 궤도를 넘어 달과 화성 등 심우주 환경에서도 로봇 기반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고 했다.

이번 방한에서 그는 국내 기업, 연구기관, 대학 관계자들과 만날 예정이다. 피게 CEO는 "한국의 강점은 발사체, 로봇 시스템, 산업 부품, 지상국·운영 역량"이라며 "애플이 아이폰을 설계하지만 삼성, 소니, TSMC 등 글로벌 공급망과 함께 제품을 만드는 것처럼, 궤도상 서비스도 한국을 포함한 각 분야 전문 기업과 협력하고 싶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