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구이저우성의 500m 구경 구면 전파망원경 '톈옌(FAST)'. /위키미디어 커먼스

국가별 과학 연구 역량을 평가하는 대표 지표로 꼽히는 '네이처 인덱스' 순위에서 중국이 3년 연속 1위를 지키며 미국과의 차이를 더욱 벌렸다. 미국이 첨단 반도체의 대중(對中) 수출을 틀어막고, 과학기술 분야 교류마저 옥죄는 동안 중국의 과학 연구 산출물은 오히려 폭증했다. 한국은 국가별 순위에서 7위로 지난해와 같았지만, 기관별 순위에선 올해도 50위 안에 한 곳도 들지 못했다.

◇톱 10 연구 기관 90% 차지한 중국

국제 학술지 '네이처'를 발간하는 스프링거 네이처는 10일(현지 시각) 이런 결과를 담은 '네이처 인덱스 2026' 순위를 발표했다. 네이처 인덱스는 세계 주요 학술지와 학술대회에 실린 고품질 연구 논문의 국가별·기관별 기여도를 집계한 지표로, 각국의 과학 연구 역량을 가늠하는 공신력 있는 국제 지표로 통한다.

국가별 순위 선두인 중국의 논문 기여도는 5만2735로, 2위 미국(2만6006)의 2배에 달한다. 중국의 1년 새 기여도가 22.4% 늘어나는 동안, 미국의 증가율은 4.2%에 그쳤다.

기관별 순위는 중국의 공세를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중국과학원이 1위, 저장대가 2위를 차지했고, 미국 하버드대가 3위로 작년보다 한 계단 내려갔다. 4~10위는 모두 중국 연구 기관과 대학이다. 상위 10곳 중 9곳을 중국이 휩쓸었다. 유럽의 대표 기관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는 처음으로 기관 순위 10위 밖으로 밀려났고,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CNRS)도 16위에 머물렀다.

과학계에서는 미국의 압박이 중국 연구 생태계의 자립을 재촉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은 최근 수년간 첨단 반도체와 AI(인공지능) 가속기, 양자 기술 관련 장비와 기술의 중국 수출을 제한해 왔다. 중국 대학과 연구 기관은 이에 맞서 자체 장비와 인력으로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궁지에 몰린 쥐(Cornered Rat)'처럼 외부 압박이 오히려 중국 정부와 대학·연구 기관의 결속을 키우고 연구 생태계 구축을 앞당기는 역설적 결과로 나타났다고 평가한다.

◇대학 선두 하버드도 끌어내려

올해 가장 상징적 변화는 미국 하버드대가 딥시크 창업자 량원펑의 모교인 중국 저장대에 대학 순위 선두를 내준 것이다. 네이처 인덱스 평가가 시작된 2015년 이후 작년까지 대학 순위 정상을 10년 동안 지켜온 하버드는 올해 처음으로 2위로 밀려났다. 저장대의 논문 기여도 증가율은 22.7%였던 반면, 하버드는 0.6%에 그친 결과다. 하버드를 제친 저장대는 중국 과학기술 생태계의 부상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꼽힌다. 올해 대학별 순위 10위 안에 중국 대학 9곳이 이름을 올렸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하버드대와 법정 공방을 벌이고, 연방 연구비를 압박·삭감하는 여파 등으로 미국 대학 순위는 하락했다. 매사추세츠공대(MIT)는 18위에서 21위로, 스탠퍼드대는 13위에서 14위로 내려앉았다.

중국 대학의 약진은 하루아침에 찾아온 것은 아니다. 중국은 수년째 세계 각지의 우수 인재를 빨아들이는 '인재 블랙홀' 전략을 구사해왔다. 영주권 특례, 파격적인 연봉, 충분한 연구비, 정년 없는 교수직을 내세우며 필즈상 수상자들을 포함한 해외 석학들을 중국 기관과 대학으로 영입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응용과학 선전한 한국, 기초과학은 숙제

국가별 순위 7위를 유지한 한국의 분야별 성적은 새로 도입된 응용과학 분야에서 세계 3위에 올랐다. 반도체·배터리·첨단 소재처럼 산업 기술과 가까운 연구 분야에서는 한국의 존재감이 확인된 셈이다. 하지만 기초과학 성격이 강한 자연과학 분야에서는 8위에 그쳤다. 특히 자연과학 세부 분야의 물리과학(11위), 지구환경과학(11위), 생명과학(12위) 등에서는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기관별 순위에서도 서울대는 작년 52위에서 올해 58위로 6계단 후퇴했다. KAIST는 82위에서 80위로 소폭 올랐다. 상위 50위 안에 든 한국 기관은 올해도 한 곳도 없다.

과학기술계에서는 AI 반도체, 차세대 배터리, 양자 기술, 소형모듈원자로(SMR) 같은 전략 기술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려면 응용과학의 강점을 기초과학 역량 강화로 연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