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제약사 모더나와 MSD는 지난 1일(현지 시각)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에서 암 환자 152명에게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와 맞춤형 암 백신을 함께 투여한 공동 임상시험 2상 결과를 발표했다. 두 회사는 이날 "암 백신과 키트루다를 함께 투여했을 때, 키트루다만 쓴 경우보다 암이 재발하거나 사망할 확률이 49% 낮았고, 암이 다른 장기로 퍼지거나 사망할 확률도 59% 낮았다"고 밝혔다.

암도 이젠 '백신'으로 잡는 시대가 됐다. 코로나 백신 개발에 사용됐던 메신저 리보핵산(mRNA) 기술이 차세대 암 치료 기술로 부상하는 것이다. 암 백신은 백신의 원리를 이용해 몸속 면역세포를 훈련시키는 신개념 치료제다. 흔히 백신은 '질병 예방 용도'로 알려졌지만, 암 백신은 이미 치료를 받은 환자의 재발과 전이를 막는 '치료용'을 뜻한다.

환자의 암세포 정보를 몸에 주입해 면역세포가 암세포만 찾아내 공격하게 만든다. 전이될 우려가 높은 고(高)위험 암 치료에 효과적이고, 재발 위험도 크게 낮출 수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맞춤형 암 백신이 앞으로 표준 암 치료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기술 개발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

그래픽=김성규

◇코로나 백신 기술로 '암'도 잡는다

그동안 암 치료는 '수술➔화학·방사선 항암➔재발 추적 검사' 과정을 거쳐왔다. 눈에 보이는 암 조직은 수술로 떼어내고 이후 독한 화학 항암 치료를 받으며 버티는 경우가 많았다. 방사선 화학 치료는 방사선을 쬐거나 화학 약물을 주입해 암세포를 공격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정상 세포도 공격받아 탈모·구토 등 부작용도 많았다.

키트루다 같은 면역항암제는 말기 암 환자에게 투여되는 치료제였다. 몸속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정밀 타격하도록 설계돼 부작용이 적지만, 암세포가 계속 면역세포를 속이고 우회로를 만들면 효과가 떨어지는 한계가 있었다. 메신저 리보핵산(mRNA) 기술의 암 백신이 도입되면, 수술 후 면역항암제와 함께 쓰면서 몸에 남은 암세포를 면역세포가 더 잘 찾을 수 있게 된다. 환자 개인의 암 조직에서만 발견되는 고유한 돌연변이 단백질(신생 항원) 정보를 복사, 몸속에 주입하기 때문에 '맞춤 치료제'가 된다.

독일 바이오기업 바이오엔텍도 개인 맞춤형 암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현재 3·4기 흑색종 환자들을 대상으로 자사의 암 백신 후보 물질 'BNT111'을 미국 제약사 리제네론의 면역항암제 '리브타요'와 함께 썼을 때 효과를 살피는 임상을 진행 중이다. 프랑스 바이오 기업 '트랜스진'은 일본 기업과 함께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개인 맞춤형 암 백신 'TG4050'을 개발하고 있다.

중국도 암 백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국 바이오 기업 '아보젠 바이오사이언스'는 췌장암·대장암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표적 삼아 공격하는 암 백신 'ABO2102'을 개발하고 있다.

◇국내 기업도 "암 백신 만든다"

국내 기업들도 속속 개인 맞춤형 암 백신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HLB의 미국 자회사 이뮤노믹 테라퓨틱스는 지난 1월 미 FDA에서 자사가 개발하고 있는 암 백신 'ITI-5000'에 대한 미국 임상 1상을 승인받았다. 회사 측은 올해 안에 환자들에게 약물 투여를 시작, 이르면 내년 하반기 중에 초기 안전성과 면역 반응에 대한 임상 데이터를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바이오 기업 애스톤사이언스도 유방암 치료 백신 'AST-301'을 개발 중이다.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와 함께 썼을 때 효과를 살피는 임상 시험 등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