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라이 릴리 사옥 외관. /조선일보 DB

미국 제약사 일라이릴리는 지난 25일(현지 시각) 자회사 '버브 테라퓨틱스'가 개발한 고지혈증 관련 유전자 치료제 'VERVE-102'의 임상 1상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주사 한 번으로 콜레스테롤 수치를 영구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유전자 치료제다.

일라이릴리에 따르면, 치료제를 최대 용량(1.0㎎/kg)으로 투여한 환자들의 경우 '나쁜 콜레스테롤'로 불리는 LDL 콜레스테롤이 평균 62% 줄었다. 효과는 18개월 가량 유지됐다. 지금까지 나온 고지혈증 치료는 스타틴 같은 먹는 알약을 복용하거나 PCSK9 억제 항체 주사제를 맞는 정도였다. 대부분 평생 반복 투여를 해야 하다 보니 불편함이 적지 않다. 일라이릴리는 "약을 평생 먹어야 하는 심혈관 질환의 위험을 단 한번의 주사로 크게 낮추는 결과를 보였다"고 했다. 이날 일라이릴리 주가는 4.9% 가량 상승했다.

단 한 번 투약으로 질병의 근원을 치료하는 '유전자 치료제' 개발에 전 세계 대형 글로벌 제약사들이 앞다퉈 돈을 투자하고 있다. 비만 치료제 다음으로 전 세계 제약 시장을 주도해 나갈 미래 분야가 유전자 치료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과거엔 유전자 치료제가 특정 유전적 결함을 가진 선천적 희귀 질환이나 말기 암 등 제한적인 영역에 집중됐다면, 최근에는 심혈관 질환, 탈모, 난청까지 현대인들의 삶의 질과 밀접한 대중적 영역으로 그 범위를 공격적으로 확장하는 추세다. 국내 기업들도 관련 기술 확보와 파이프라인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비만 치료제 다음은 이것"…빅파마 돈 쏠린다

지난 11일(현지 시각) 미국 바이오 기업 프랙틸헬스는 평생 한 번만 맞으면 되는 유전자 비만 치료제에 대한 임상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네덜란드 규제 당국으로부터 세계 최초의 GLP-1 유전자 치료제인 '레쥬바'에 대한 임상 1·2상을 승인받은 것이다. 회사 측은 올해 안에 호주에서도 임상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본래 유전자 치료제는 개발 과정이 까다롭고 연구·개발 비용도 워낙 많이 드는 탓에 적용 범위를 넓히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 유전자 교정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치료제 타깃도 대중적인 만성 질환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전 세계 대형 글로벌 제약사들도 최근 비만 치료제를 이을 차세대 동력으로 유전자 치료제를 낙점하고 자금을 쏟아붓는 모습이다.

일라이릴리는 지난 수년 동안 유전자 치료제 관련 투자를 강화해 온 대표 기업으로 꼽힌다. 지난해 버브 테라퓨틱스를 13억달러(약 1조9000억원)에 인수하고 유전자 편집 기반의 심혈관 질환 치료제 파이프라인을 갖춘 데 이어, 유전성 난청 치료제 개발을 위해 우리나라 기업 알지노믹스와도 13억달러 규모의 플랫폼 기술 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알지노믹스가 보유한 RNA 편집·교정 플랫폼으로 유전자 치료제를 함께 개발하기 위한 것이다.

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는 미국 바이오텍 세븐티바이오(2seventy bio)로부터 혈우병A 유전자 치료 프로그램과 체내 유전자 편집 플랫폼 기술을 최대 4000만달러(약 600억원) 규모에 인수했다. 특정 DNA 부위를 정밀하게 잘라 교정하는 기술로, 혈우병 환자가 평생 응고인자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되는 '완치형 치료제'를 목표로 개발 중이다.

스위스 제약회사 노바티스는 2024년 유전성 신경 근육 질환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는 미국 바이오텍 케이트 테라퓨틱스를 11억달러(약 1조6000억원)에 인수했고, 최근엔 미국 바이오 기업 애로헤드 파마슈티컬스와 손잡고 고지혈증 관련 유전자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성공 사례도 계속 나오고 있다. 지난달 미 식품의약국(FDA)은 미국 제약사 리제네론이 개발한 유전성 난청 치료를 위한 유전자 치료제 '오타르메니'를 세계 최초로 승인했다. 인텔리아 테라퓨틱스가 개발하는 유전성 혈관부종 유전자 치료제도 최근 임상 3상에 성공하면서 미국 내 승인 신청 절차에 돌입한 상태다.

◇"난청부터 탈모, 지방간염까지"… 기업도 뛴다

시장조사 기관 프리시던스 리서치는 전 세계 유전자 치료제 시장은 2023년 85억달러(약 12조원)에서 2032년엔 800억달러(약 12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향후 시장이 10배 가량 커질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국내 기업들도 유전자 치료 관련 기술 확보를 위해 뛰고 있다. 알지노믹스는 RNA 편집·교정 플랫폼을 보유한 기업으로 꼽힌다. 어떤 유전자 돌연변이에도 적용할 수 있고, 필요한 만큼만 치료 유전자를 넣을 수 있어 안전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알지노믹스는 이 외에도 간암 및 교모세포종 치료제 'RZ-001',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RZ-003', 망막색소변성증 치료제 'RZ-004' 등을 개발하고 있다.

올릭스는 일라이릴리에 대사 이상 지방간염(MASH) 치료제 'OLX702A'의 기술 이전을 추진 중이다. 지방간을 유발하는 특정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는 데 초점을 둔 치료제다. 향후 릴리가 독점 권리를 확보하는 옵션을 행사할 경우, 단계별 마일스톤을 포함해 최대 6억 3000만달러(약 9400억원) 규모의 대형 계약으로 이어지게 된다.

올릭스의 탈모 파이프라인 'OLX104C'도 현재 호주에서 임상 1상을 진행하고 있다. 남성형 탈모와 관련된 유전자 작동을 억제하고 탈모 진행을 늦추는 RNA 기반 치료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