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나머지 지인과는 자연스레 멀어지는 건 타고난 본능일까. 인간의 이런 사회관계 방식이 침팬지에게도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침팬지는 사람처럼 나이가 들수록 관계를 좁히고, 가까운 상대에게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 등 국제 공동 연구팀은 침팬지와 보노보 24개 집단, 284마리의 사회적 관계를 분석한 결과를 국제 학술지 '아이사이언스'에 발표했다. 보노보는 침팬지와 가까운 유인원으로, 두 종 모두 인간과 가장 가까운 현생 친척으로 꼽힌다. 연구진은 유인원들이 서로 털을 골라주는 '그루밍' 행동에 주목했다. 그루밍은 몸을 깨끗하게 하는 행동이지만, 유인원 사회에서는 친밀감을 확인하고 관계를 유지하는 소통 방식이다.
연구진은 수학 모델을 이용해 침팬지와 보노보가 한정된 시간과 관심을 누구에게 얼마나 쓰는지 분석했다. 그 결과 대부분 개체는 소수의 선호 상대에게 많은 그루밍 시간을 쓰고, 다수의 나머지 개체와는 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친한 친구 몇 명, 그보다 덜 가까운 친구들, 더 넓은 지인으로 이어지는 인간 사회 관계 구조와 비슷했다. 집단 규모가 클수록 사회적 관심을 더 선별적으로 쓰는 경향도 나타났다.
다만 침팬지와 보노보가 친구를 상대하는 방식은 차이가 있었다. 보노보는 여러 개체에게 비교적 고르게 그루밍 시간을 나눴다. 사회관계망이 더 평등한 구조에 가까웠다. 반면 침팬지는 더 적은 수의 상대에게 사회적 노력을 집중했다. 연구진은 이런 차이가 두 종의 사회적 성격 차이를 반영한다고 해석했다. 보노보는 더 평등하고 유동적인 관계를 맺는 반면, 침팬지는 소수 친밀한 관계를 더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를 가려 만나는 현상도 나타났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넓은 인간관계보다 가까운 몇몇에게 더 집중한다. 침팬지도 비슷했다. 연구진은 침팬지가 나이가 들수록 사회적 시간을 쓰는 상대를 줄이는 경향을 보였다고 밝혔다. 반면 보노보는 이런 경향이 뚜렷하지 않았다. 연구진은 침팬지와 보노보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친구 관계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동물마다 사회관계를 맺는 방식도 다르게 진화했을 수 있다고 봤다.
이번 연구는 우정과 사회관계를 맺는 방식이 인간만의 특징은 아닐 가능성을 보여준다. 연구진은 "친구를 고르고 관계에 따라 시간을 나누는 방식은 인간에게만 나타나는 고유한 특성이 아닐 수 있다"며 "인간의 사회성도 더 오래된 진화의 뿌리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