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세포 하나가 갈림길 앞에 서 있다. 한쪽 길로 가면 피부세포, 다른 길로 가면 신경세포, 또 다른 길로 가면 색소세포가 된다. 열차가 갈림길에서 선로 전환기에 따라 다른 레일로 들어서듯, 세포도 유전자 스위치가 어떻게 켜지고 꺼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세포가 된다.

"너는 색소세포가 될 운명"이라고 말하듯 세포의 미래를 예측하는 AI(인공지능)가 등장했다. 세포가 어느 레일로 들어설지 내다보고, 그 길로 이끈 유전자까지 찾아내는 AI다.

미국 스토워스 의학연구소와 영국 옥스퍼드대 등 국제 공동 연구팀은 세포가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고, 그 변화를 이끄는 유전자를 찾아내는 AI 모델 '레그벨로(RegVelo)'를 개발했다고 국제 학술지 '셀(Cell)'에 최근 밝혔다.

지금까지는 세포의 '결과'만 보고, 과정을 짐작해야 했다. 이미 색소세포가 된 세포를 보고 "어떤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을까"를 거꾸로 추적하는 식이었다. 색소세포가 되는 길로 들어서는 순간, 어떤 유전자가 결정적 역할을 했는지 알아내기 어려웠던 이유다.

레그벨로는 세포가 다른 길로 들어서는 순간, 어떤 유전자가 선로 전환기처럼 작용했는지 찾아내는 AI다. 실제로 연구팀은 레그벨로를 제브라피시(열대어) 배아 세포 분석에 적용해 성과를 거뒀다. 초기 세포들이 색소세포가 되는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유전자들을 새롭게 찾아냈고, 실험으로 이를 검증했다.

레그벨로처럼 세포의 미래를 예측하는 AI는 줄기세포로 피부세포, 연골세포, 심장근육세포 등 원하는 세포를 만드는 '재생의학' 연구에 활용될 전망이다. 줄기세포를 원하는 세포로 만들려면 어떤 유전자를 언제 켜고 꺼야 하는지 알아야 하는데, 레그벨로가 그 답을 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암세포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추적하는 연구에도 쓰일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연구팀은 레그벨로가 아직 유전자 간 복잡한 상호작용을 모두 분석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한계로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