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와 아시아 12개국에서 인터넷을 쓰는 청소년 6명 중 1명꼴로 온라인 성착취·학대 피해를 경험했다는 대규모 연구 결과가 나왔다./제미나이 생성

아프리카와 아시아 12개국에서 인터넷을 쓰는 청소년 6명 중 1명꼴로 온라인 성착취·학대 피해를 경험했다는 대규모 연구 결과가 나왔다. 피해 청소년의 절반 이상은 자신이 겪은 일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청소년 대상 성범죄의 무대가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 등 디지털 공간으로 확대되고 있지만, 피해는 좀처럼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경고다.

영국 런던정경대(LSE) 등 국제 공동연구팀은 에티오피아·케냐·인도네시아·필리핀 등 아프리카·동남아시아 12개국의 12~17세 인터넷 이용자 1만1912명을 분석한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27일(현지 시각) 발표했다.

연구팀은 성적 대화나 행위 요구, 신체 사진·영상 요구, 원치 않는 성적 이미지 수신, 사적 이미지의 무단 유포, 온라인 그루밍, 성적 협박·갈취 등 디지털 기술이 개입된 아동 성착취·학대 경험을 조사했다. 분석 결과, 인터넷을 사용하는 12~17세 청소년의 17%가 지난 1년 사이 이런 피해를 한 차례 이상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각국 인터넷 보급률과 결합해 추산하면 12개국에서 한 해 1000만명이 넘는 청소년이 피해를 입은 셈이다.

국가별 차이도 컸다. 인터넷 보급률 95%인 필리핀의 피해율이 28.6%로 가장 높았다. 우간다(27.7%)와 모잠비크(25.9%)가 뒤를 이었고, 베트남(5.5%)은 가장 낮았다. 연구팀은 인터넷 접속이 빠르게 확대되는 저·중소득 국가에서 피해 규모가 앞으로 더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청소년의 온라인 성착취·학대 피해에서 성별 차이는 거의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남자 16.9%, 여자 17.0%로 피해율이 거의 같았다. 오프라인 성폭력 피해가 대체로 여자에게 집중되는 것과 뚜렷이 대비된다.

피해 청소년의 51%는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 사실을 밝힌 청소년은 경찰·교사·사회복지사·상담 전화 같은 공식 채널보다 친구나 가족에게 털어놓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피해를 알리지 않은 이유로는 "어디에, 누구에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37.6%)가 가장 많았고, 부끄러움·수치심(19.6%), "심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14.2%)가 뒤를 이었다.

연구팀은 미성년자 계정의 개인 정보를 자동으로 비공개 처리하고, 성인과 청소년의 부적절한 접촉을 제한하며, 온라인 그루밍·성적 협박 패턴을 자동 탐지하는 등 플랫폼 차원의 안전 설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실제보다 과소평가됐을 가능성이 있다. 분석 대상 자료가 수집된 2020~2021년은 생성형 AI(인공지능)와 딥페이크 기술이 본격 확산되기 전이다. 연구팀은 생성형 AI와 딥페이크로 만든 아동 성 착취물이 급증하고 있고, 그 속도가 기존 법·보호 체계의 대응을 앞지르고 있다고 했다. 한국은 이번 조사 대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스마트폰 보급률과 청소년 소셜미디어 이용률이 높은 우리나라가 이 문제의 예외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