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속 단백질이 부족해지면 왜 유독 고기나 단백질 음식이 당길까. 국내 연구진이 특정 영양소가 부족할 때 몸이 필요한 음식을 골라 찾게 되는 과학적 원리를 밝혀냈다.
단순히 입맛의 문제가 아니라, '제2의 뇌'라 불리는 장(腸)이 직접 영양 상태를 감지하고 뇌를 설득해 식단을 재구성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기초과학연구원(IBS)의 마이크로바이옴-체-뇌 생리학 연구단 서성배 단장 연구팀이 서울대, 이화여대와 함께 몸속 단백질이 부족할 경우 필수 아미노산을 선택하게 만드는 이른바 '장-뇌 축(gut-brain axis)'의 정밀한 작동 원리를 규명했다고 22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22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소개됐다.
◇"단백질 부족한 초파리, 설탕 대신 아미노산 찾았다"
연구팀은 먼저 초파리 실험을 진행했다. 초파리는 유전 구조가 단순하면서도 인간과 대사 경로가 유사한 생명체로 꼽힌다.
연구팀은 특정 그룹의 초파리에게 필수 아미노산이 전혀 들어 있지 않은 먹이만을 계속 주고 인위적으로 '단백질 기아 상태'를 만들었다. 이후 단백질이 부족해진 초파리가 필수 아미노산이 든 먹이와 포도당(설탕) 먹이 중 어떤 것을 먼저 먹는지 확인했다. 본래 초파리들은 에너지원이 풍부한 포도당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단백질 결핍 상태의 초파리는 달랐다. 평소 선호하던 당분 대신 필수 아미노산이 포함된 먹이를 우선적으로 섭취했다. 배가 고프다고 아무 음식이나 먹는 것이 아니라, 몸에 부족한 영양소를 스스로 선택해 보충했다는 뜻이다.
◇장이 먼저 감지… 뇌 신경회로 바꿨다
연구팀은 이어 장과 뇌가 실제로 신경 신호를 주고받으며 음식 선택 행동을 조절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핵심에는 '칼슘 이미징(calcium imaging)' 기술이 있다. 살아 있는 생물의 뉴런이 활성화될 때 세포 내 칼슘 농도가 증가하는 현상을 형광으로 시각화하는 기술이다.
연구진은 뉴런이 활성화되면 빛을 내는 형광 단백질을 가진 유전자 조작 초파리를 제작, 어떤 신경세포가 언제 활성화되는지 실시간으로 관찰했다.
그 결과 단백질 부족 신호가 발생하면 장에서 나온 신호가 뇌의 특정 뉴런으로 빠르게 전달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필수 아미노산 섭취를 촉진하는 'EB R3m' 뉴런은 강하게 활성화됐고, 반대로 탄수화물 섭취를 유도하는 'DH44' 뉴런은 억제됐다.
즉 장이 뇌의 회로를 직접 조절해 "당분보다 단백질을 먼저 먹으라"고 행동 우선순위를 바꾼 것이다.
연구팀은 또 이 과정이 단일 경로가 아니라 두 개의 시스템으로 작동한다는 점도 밝혀냈다.
우선 장신경이 아세틸콜린 신호를 이용해 단백질 부족 정보를 뇌에 즉각 전달하는 '빠른 신경 회로'가 작동했다. 이후 장에서 분비된 펩타이드 호르몬 'CNMa'가 혈액을 타고 천천히 뇌에 도달해 단백질 선호 행동을 장시간 유지시켰다. 연구진은 이를 '빠른 신경 반응'과 '느린 호르몬 반응'이 협력하는 정밀 영양 조절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생쥐에서도 동일… 비만 치료 새 단서
이 같은 현상은 초파리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연구팀은 추가 실험을 통해 포유류인 생쥐도 단백질이 부족할 경우 필수 아미노산을 우선적으로 섭취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이번 발견이 비만과 식이 행동 장애 연구에도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시장을 주도하는 비만 치료제 상당수는 장 호르몬(GLP-1) 신호를 활용하지만, 장에서 나온 신호가 실제로 어떻게 뇌 행동 회로를 바꾸는지는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성배 IBS 연구단장은 "이번 연구는 장과 뇌가 어떻게 협력해 특정 영양소를 선택하도록 행동을 조절하는지 보여준 연구"라며 "앞으로 비만·대사 질환은 물론이고, 폭식증·거식증 같은 식이 행동 장애 치료 연구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