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심의 특화 인공지능(AI) 서비스의 메인 화면./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지난해에는 새벽 2시에 자고 아침 6시에 일어나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심의를 했습니다. 올해는 잠드는 시간이 2시간 빨라졌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14일 세종 정부컨벤션센터에서 개최한 정부 예산 심의 인공지능(AI) 도입 간담회에서 임태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전문위원 겸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 지능연구본부 본부장은 예산심의 특화 AI를 실제로 써본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국가 R&D 예산 심의는 각 부처가 제출한 R&D 사업 계획을 검토해 다음 해 어느 사업에 얼마를 배정할지 조정하는 절차다. 매년 5~6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운영위원회 산하 10개 기술 분야별 전문위원 166명과 예산심의 담당자들이 이 작업을 맡는다.

문제는 검토해야 할 사업과 자료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국가 R&D 사업 수는 2배 이상 증가했다. 전문위원들은 1000개가 넘는 사업의 필요성과 예산 규모를 따지는 동시에, 서로 비슷하거나 겹치는 사업이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회의록 요약, 검토의견서 작성, 조정결과서 정리 같은 행정 업무도 적지 않다.

과기정통부는 올해부터 국가 R&D 예산 배분·조정 과정에 예산심의 특화 AI를 활용하고 있다. 이름은 '연구개발 예산 심의 인공지능'의 줄임말인 '연.예.인'이다.

이번 시스템은 국내 AI 기업 업스테이지의 솔라오픈 모델을 기반으로 개발됐다. 과기정통부는 "여러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가운데 현재 보유한 그래픽처리장치(GPU) 자원, 개발 기간, 실제 서비스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업스테이지의 모델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개발에는 과기정통부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참여했다. 이번 시스템은 지난해 12월부터 약 5개월간 개발됐고, 별도 정부 예산 투입 없이 KISTI와 ETRI가 보유한 인력과 GPU 자원을 활용해 구축됐다.

이번에 도입되는 AI는 이 가운데 반복적이고 시간이 많이 드는 작업을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AI가 예산을 직접 정하거나 사업의 통과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과거 사업 자료와 신규 사업 계획을 비교해 유사·중복 가능성이 있는 사업을 찾아주고, 회의록이나 검토의견서 초안을 작성하는 방식으로 심의 과정을 지원한다. 복잡한 기술 용어를 설명하고 긴 사업설명서를 핵심 위주로 요약하며, 전문위원들이 사업별 검토의견서를 함께 작성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협업 기능을 제공한다.

이날 시연에서는 특정 신규 사업을 대상으로 과거 부처 사업과의 유사성을 확인하는 과정이 소개됐다. AI는 유사도가 높은 사업을 목록으로 제시하고, 각 사업의 목적, 내용, 사업비, 기간, 기존 사업과의 유사점과 차별점을 요약해 제공했다. 전문위원은 이를 바탕으로 과거 예산요구서와 연차별 투입 금액, 연구 결과 등을 확인하며 신규 사업의 차별성을 검토할 수 있다.

과기정통부는 지난 5년간 축적된 약 5000개 국가 R&D 사업의 예산요구서, 기획보고서, 전문위원 검토의견서 등을 AI 학습에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또 국가과학기술지식정보서비스(NTIS)의 연구 성과 데이터 약 1243만건과도 연동했다. NTIS는 정부 R&D 과제, 연구 성과, 논문, 특허 등 과학기술 정보를 모아둔 국가 데이터베이스다.

실제로 최근 3일 동안 특화 AI를 써본 전문위원들은 "초안을 작성하는 데 드는 시간을 줄인 덕분에 전문위원들끼리 논의를 훨씬 많이 할 수 있다", "상위 전략과의 부합성, 차별성, 연계성, 전체 의견을 작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의견을 냈다.

다만 개선점도 있었다. 전문위원들은 초안의 논리적 일관성을 점검하는 기능, 다른 기술 분야 전문위원회와 의견을 주고받는 인터페이스 등이 추가되면 더 유용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AI가 글을 빨리 써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여러 분야의 판단을 연결하고 검토 의견의 논리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뜻이다.

김미미 과기정통부 기계정보통신조정과장은 "이번 시스템을 올해 시범 적용한 뒤 빠르게 고도화해 나갈 것"이라며 "마지막 단계에서는 심의 담당자 수준의 검토 의견까지 생성하는 것이 목표다. 내년까지 주요 고도화 단계를 마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과기정통부는 각 부처가 R&D 사업을 기획하는 단계에서도 이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도록 확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부처가 사업을 새로 만들기 전에 다른 부처가 비슷한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필요하면 협업 과제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정통부 장관은 "올해 시범 적용을 시작으로 유사·중복 사업 분석 등 심의지원 기능을 고도화하고, 향후 각 부처가 R&D 사업을 기획하고 예산을 요구하는 과정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