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타바이러스가 발병해 승객 3명이 숨진 크루즈선 MV혼디우스호가 스페인 그라나딜라 데 아보나 항구에 정박해 있다./연합뉴스

대서양을 항해하던 크루즈선에서 한타바이러스 감염자가 잇따라 나오면서, 그동안 과학계와 제약업계의 관심에서 밀려 있던 희귀 감염병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8일 기준 네덜란드 선적 크루즈선 'MV 혼디우스'와 관련해 8명이 한타바이러스에 감염됐고, 이 중 3명이 숨졌다. 감염자 8명 가운데 6명은 실험실 검사로 확진됐고, 모두 남미에서 주로 발견되는 '안데스 바이러스' 감염으로 확인됐다.

이번 사태가 주는 충격은 단순히 감염자가 나왔고, 치명률이 높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한타바이러스는 치명적인 폐 질환을 일으킬 수 있지만, 현재 감염 후 바로 쓸 수 있는 치료제도 없고, 예방할 수 있는 백신도 없다. 환자가 발생해도 의료진이 할 수 있는 일은 산소를 공급하고 중환자실에서 버티게 하는 치료가 사실상 전부다. WHO도 "한타바이러스 감염에는 허가된 치료제나 백신이 없고, 조기 중환자 치료가 생존율을 높일 수 있는 최선"이라고 설명한다.

치료제와 백신이 없는 이유는 이 바이러스가 그동안 '긴급한 위협'으로 평가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타바이러스는 주로 쥐 등 설치류의 배설물, 침, 오염된 먼지 등을 통해 사람에게 감염된다. 코로나19나 독감처럼 공기 중으로 쉽게 퍼지는 바이러스는 아니다. 이번에 확인된 안데스바이러스는 한타바이러스 가운데 사람 간 전파가 확인된 드문 종류지만, 이 역시 장시간 밀접 접촉 같은 제한적 상황에서 전파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타바이러스(녹색)의 전자현미경 사진. 유람선에서 집단 감염을 일으킨 한타바이러스는 인간 간 전염이 가능한 변종인 안데스 바이러스로 추정된다./미 CDC

문제는 전파력은 낮아도 한 번 감염되면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WHO에 따르면 2025년 미주 지역에서는 8개국에서 한타바이러스 감염 229건과 사망 59건이 보고됐다. 감염 건수는 많지 않았지만 치명률은 25.7%에 달했다. WHO는 미주 지역 한타바이러스 감염의 치명률이 최대 50%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아시아·유럽 지역의 치명률이 1~15%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훨씬 높다.

낮은 전파력과 적은 환자 수는 역설적으로 치료제 개발을 늦췄다. 전문가들은 "공기 중으로 전파되는 고전염성 바이러스 위협이 아니기 때문에 팬데믹 대비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었다"고 지적한다. 제약사 입장에서도 환자가 적은 질환은 시장성이 낮다. 임상시험 대상자를 모으기도 어렵다. 일부 연구팀이 수십 년간 한타바이러스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해 왔지만, 후보 물질이 실제 의약품으로 이어지기 어려웠던 이유다.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부 연구팀은 안데스 바이러스를 겨냥한 DNA 백신을 개발해 초기 임상시험에서 중화 항체 반응을 확인했다. 일본에서 독감 치료제로 승인된 항바이러스제 파비피라비르가 실험실에서 안데스 바이러스를 억제한다는 연구도 있다. 한타바이러스 생존자의 혈액에서 강력한 항체를 골라 항체 치료제로 개발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면 돈이 필요하다. 후보 물질이 실제 치료제나 백신이 되려면 대규모 임상시험과 생산 투자, 규제 절차를 거쳐야 한다. 감염자가 적고 유행이 산발적인 질환은 기업이 개발비를 감당할 유인이 작다. 정부와 재단 지원이 없으면 연구가 실험실 안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19처럼 전 세계를 뒤흔드는 감염병에는 막대한 연구비가 몰리지만, 드물게 발생하는 고위험 감염병은 관심 밖에 놓이기 쉽다.

이번 크루즈선 감염은 한타바이러스가 당장 세계적 대유행으로 번질 것이라는 신호는 아니다. 일상적 관광이나 일반 생활에서 쉽게 전파되는 바이러스도 아니다. 오히려 선박이라는 밀폐된 환경에서 장시간 접촉이 이어진 특수 사례로 평가된다. 그러나 경고는 분명하다. 위험이 작다고 판단돼 관심을 받지 못한 감염병은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서도 밀린다. 한 전문가는 "공기 중으로 전파되는 고전염성 바이러스 위협이 아니기 때문에 팬데믹 대비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었다"며 "이번 사건으로 한타바이러스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것은 확실하지만, 실제 연구비와 재정 지원으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