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전설의 괴물 '크라켄'을 묘사한 19세기 그림. 이처럼 거대한 문어가 백악기에 살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거대한 팔로 배를 통째로 휘감아 바다 밑으로 끌어내린다는 바다 괴물 '크라켄'. 북유럽 뱃사람들이 수백 년간 두려워한 전설 속 존재다. 크라켄을 떠올리게 하는 거대 문어가 백악기 바다에 살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공룡이 육지를 지배하던 약 1억 년 전부터 7200만 년 전까지 바다에서는 몸길이가 최대 18.6m에 이르는 문어가 최상위 포식자였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일본 홋카이도대 연구팀은 일본과 캐나다 밴쿠버섬의 백악기 지층에서 나온 문어 턱뼈 화석 27개를 분석한 결과를 최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문어는 몸 대부분이 연한 조직으로 이뤄져 화석이 거의 남지 않는다. 딱딱한 키틴질 턱뼈가 당시 문어의 존재를 보여주는 드문 단서다. 연구팀은 첨단 스캐닝 장비와 인공지능(AI) 분석을 결합해 바위 속에 묻힌 턱뼈 형태를 디지털로 복원했다. 이번 화석 중 12개는 학계에 처음 보고된 것들이다.

분석 결과, 백악기 바다에는 최소 두 종류의 문어가 살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가장 큰 종은 '나나이모테우티스 하가르티'다. 현생 긴몸통문어의 턱뼈와 몸길이 비율을 적용했을 때 전체 길이가 6.6~18.6m로 추정됐다. 오늘날 몸길이 12m를 넘는 대왕오징어보다 최대 1.5배 큰 수준이다. 연구진은 이 문어를 "지구 역사상 가장 큰 무척추동물 중 하나"라고 했다. 다른 한 종은 2008년 발표됐던 '나나이모테우티스 젤레츠키'로, 길이가 2.8~7.7m로 추정됐다.

턱뼈에는 단단한 먹이를 반복적으로 깨문 흔적도 남아 있었다. 연구팀은 이 문어가 조개류, 암모나이트, 갑각류, 물고기의 껍데기와 뼈를 강한 턱으로 으깨 먹었을 것으로 봤다. 긴 촉수 두 개로 먹이를 낚는 오징어와 달리, 팔 여덟 개로 먹이를 붙잡은 뒤 턱으로 처리하는 사냥 방식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턱뼈 마모가 좌우 대칭이 아니었다는 점도 흥미로운 발견이다. 한쪽을 더 자주 쓰는 '편측 우세' 흔적으로, 사람의 오른손잡이·왼손잡이와 비슷한 현상이다. 연구팀은 1억 년 전 문어가 단순히 몸집만 큰 포식자가 아니라, 뇌 기능이 좌우로 분화된 복잡한 행동 양식을 갖췄을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현생 문어도 병뚜껑을 열고 미로를 통과할 정도로 지능이 높은 동물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이번에 분석한 거대 문어는 영리하며, 고도로 효율적인 최상위 포식자로 추정된다"며 "무척추동물계의 범고래이자 백상아리 같은 존재였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