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졸중은 한국에서만 매년 10만명 넘게 발생하고 암에 이어 사망률이 높은 중증 질환이다. 지금까지 유일한 치료법은 막힌 뇌혈관을 뚫기 위해 혈전을 녹이는 약(tPA)을 3~4시간 안에 투여하는 응급 조치였다. 그나마 혈전이 풀리더라도 뇌세포 손상이 계속되는 경우가 많아 한계가 컸다. 뇌졸중 자체는 사실상 치료할 방법이 없었던 셈이다.

국내 연구진이 이 난제에 돌파구를 열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기억 및 교세포 연구단 이창준 단장 연구팀과 을지대학교 공동 연구진은 뇌졸중의 핵심 원인을 새롭게 규명하고, 자체 개발한 신약 후보 물질(KDS12025)로 뇌졸중에 걸린 원숭이의 마비된 손을 회복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28일 밝혔다. 그동안 뇌를 보호한다고 여겨졌던 '세포 장벽'이 오히려 뇌세포를 죽이는 원인이라는 정반대의 원리를 밝혀낸 것이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셀 메타볼리즘(Cell Metabolism)'에 같은 날 게재됐다.

그래픽=박상훈

◇"보호막이 아니라 뇌세포 죽이는 장벽이었다"

뇌졸중은 뇌혈관이 막히는 뇌경색이 대부분이다. 혈관이 막히면 산소 공급이 끊기면서 뇌세포가 죽기 시작한다. 이때 뇌에서 뇌 환경 유지 역할을 담당하는 별 모양 세포인 '별세포'가 손상 부위 주변에 일종의 장벽을 쌓는다. '교세포 장벽'이다. 기존 학계에서는 이 장벽이 염증 확산을 막아주는 보호막이라고 봤다.

하지만 연구진의 발견은 정반대였다. 혈관이 막히면 뇌 속에 과산화수소라는 유해 물질이 급격히 쌓인다. 농도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별세포가 자극을 받아 '콜라겐'이라는 단백질로 이뤄진 장벽을 만들어내는데, 이 장벽이 안에 있는 뇌세포(신경세포)를 둘러싸 죽게 만든다는 것이다. 보호막이라고 믿었던 것이 사실은 뇌세포를 가두는 감옥이었던 셈이다. 이 단장은 "피부에 상처가 나면 딱지가 앉고 흉터가 남는 것과 비슷한 원리"라며 "피부 흉터는 짜내거나 제거할 수 있지만, 두개골로 막힌 뇌에서는 이 흉터를 없애기가 어렵다"고 했다. 결국 장벽이 만들어지면서 뇌 안에 흉터가 생기면, 영구적인 손상으로 남아 뇌졸중을 악화시킨다는 뜻이다.

27일 서울 중구 비즈허브 서울센터 세미나룸에서 이창준 IBS 기억 및 교세포 연구단 단장이 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최원우 기자

◇마비된 원숭이 손, 일주일 만에 완전 회복

연구진은 원인 규명에서 더 나아가 치료 가능성을 제시했다. 과산화수소를 분해하고 콜라겐 생성을 억제하는 신약 후보 물질을 자체 개발한 것이다. 이 물질은 혈액 속 헤모글로빈이 과산화수소를 분해하는 능력을 약 100배 높여주는 화합물이다. 구조가 단순해 대량 생산이 쉽고, 뇌로 가는 길목인 '혈뇌 장벽'도 잘 통과해 뇌까지 잘 도달한다.

생쥐 300여 마리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이 물질을 투여하자 교세포 장벽과 뇌세포 사멸이 거의 사라졌다. 떨어졌던 운동 능력도 일주일 만에 정상 수준으로 돌아왔다.

결정적인 성과는 영장류 실험에서 나왔다. 뇌졸중을 유발한 원숭이에게 이 물질을 투여한 결과, 3일 후 뇌 병변 크기가 확연히 줄었다. 일주일 뒤에는 마비됐던 손이 완전히 회복됐다. 과일을 집어 먹는 실험에서 뇌졸중 원숭이는 운동 장애로 전혀 움직일 수 없었지만, 치료받은 원숭이는 10번 시도 모두 성공했다. 인간과 생물학적으로 가장 유사한 영장류에서 치료 효과를 확인해, 실제 환자 대상 임상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IBS 제공

◇"뇌졸중 골든타임, 최대 16배 늘릴 수도"

이번 연구는 뇌졸중 치료의 '골든타임' 개념까지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기존에는 3~4시간 안에 혈전을 녹이는 약을 투여해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연구진이 개발한 물질은 뇌세포를 죽이는 장벽이 생기지 않게 막는 방식이다. 뇌졸중 발생 48시간 뒤에 투여해도 치료 효과가 확인됐다. 골든타임이 3~4시간에서 48시간으로, 최대 16배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투여 방법도 다양하다. 연구팀은 경구(입으로 먹는 방식)·복강 주사·정맥 주사 등 여러 방식으로 실험했는데, 모두 효과가 있었다. 이 물질 자체가 혈류를 다시 원활하게 만드는 효과도 관찰돼, 기존 혈전 치료제 없이도 새로운 치료법이 될 수 있는 가능성까지 열려 있다.

아직은 신약 후보 물질 단계라 환자 대상 임상시험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그동안 사실상 효과적인 치료제가 없던 뇌졸중 분야에서 치료 가능성을 제시한 것 자체가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동 교신 저자로 참여한 이보영 IBS 연구위원은 "이번 발견이 뇌졸중뿐 아니라 치매, 파킨슨병 같은 퇴행성 뇌 질환 치료의 초석이 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