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노란색)가 인체 세포 표면에 붙어 있는 모습을 찍은 주사전자현미경 사진./NIAID

박쥐에서 주로 발견되는 알파코로나바이러스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통로를 이용해 인간 세포에 침투할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파이브라이트연구소가 이끄는 국제 공동 연구진은 이같은 내용을 23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사람에게 나타나는 감염병의 약 60~75%는 동물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동물에서 사람으로 병원체가 옮겨오는 현상을 '인수공통감염'이라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 이후 어떤 동물 바이러스가 사람 세포에 들어가 감염을 일으키는 지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바이러스가 세포에 들어가려면 세포 표면의 특정 단백질인 '수용체'와 맞아떨어져야 한다. 이는 흔히 열쇠와 자물쇠의 관계에 비유된다. 바이러스 표면의 스파이크 단백질이 열쇠라면, 사람 세포의 수용체는 자물쇠다. 지금까지 코로나바이러스가 이용하는 수용체는 6종 정도가 알려졌지만, 연구는 주로 코로나19의 원인인 SARS-CoV-2나 중동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MERS-CoV) 등 베타코로나바이러스에 집중돼 있었다. 반면 박쥐에서 다양하게 퍼져 있는 알파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연구 공백은 상대적으로 크다.

연구진은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알파코로나바이러스의 유전적 다양성을 대표할 수 있는 스파이크 단백질 40종을 골라, 실제 질병을 일으키지 않도록 만든 유사 바이러스에 붙여 실험했다.

그 결과, 박쥐 유래 알파코로나바이러스의 대부분은 기존에 알려진 코로나바이러스 수용체를 쓰지 못했다. 그런데 케냐의 하트코박쥐에서 처음 분리된 코로나바이러스(CcCoV-KY43)는 기존에 알려진 수용체와 무관하게 인간 세포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연구진은 추가 분석 끝에 이 바이러스가 인간 세포 표면 단백질인 'CEACAM6'를 새로운 입구로 사용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유사 바이러스들과 일부 유라시아 계통 바이러스도 비슷한 특성을 보였다.

다만 이번 연구가 알파코로나바이러스가 곧 사람에게 감염된다는 뜻은 아니다. 연구진이 박쥐 채집 지역 인근 주민 368명의 혈액 시료를 조사했더니, 이 바이러스가 사람 사이에 널리 퍼졌다는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즉 현재로서는 사람에게 쉽게 전파될 가능성은 낮다는 뜻이다.

김호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바이오메디컬융합연구본부 선임연구원은 "세포 침투 능력은 인수공통감염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라며 "실제 전파에는 효율적인 복제, 면역 회피, 적절한 노출 경로 등 추가 조건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알파코로나바이러스도 인간 세포의 문을 열 수 있음을 보여줬다"며 "아직 주목받지 못했던 바이러스 집단에서도 인간 세포와 결합할 수 있는 새로운 경로가 나올 수 있다.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동물 바이러스의 인체 감염 가능성을 더 이른 단계에서 찾아내고 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참고 자료

Nature(2026),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6-10394-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