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가 시바견을 타고 화성으로 향하는 밈. /온라인 커뮤니티

"인류를 화성으로 보내겠다."

일론 머스크가 2002년 스페이스X를 세운 뒤 20년 넘게 외쳐온 구호입니다. 본사 카페에는 인간이 화성에 정착하는 과정을 그린 벽화가 있고, 회사는 'Occupy Mars(화성을 점령하라)'라고 적힌 티셔츠를 팔았습니다. 머스크 자신도 공식 석상에서 이 옷을 즐겨 입었습니다. 국내에서도 머스크가 '도지코인'의 상징 시바견을 타고 "화성 갈끄니까"를 외치는 밈이 유행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그의 입에서 화성이란 말이 좀처럼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인공지능(AI)', '달', '궤도 데이터센터'가 더 자주 언급됩니다. 머스크는 22일 스페이스X가 AI 코딩 스타트업 커서(Cursor)를 600억달러(약 89조원)에 인수할 수 있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습니다. 커서는 자연어로 코드를 짜는 이른바 '바이브 코딩' 열풍의 대표 주자입니다. 화성은 물론 우주와도 거리가 먼 AI 기업입니다. 지구 궤도를 도는 AI 데이터센터, 달에 짓는 AI 반도체 공장 같은 구상도 잇달아 내놓고 있습니다. 화성보다 인간이 일하지 않아도 되는 'AI 유토피아' 얘기를 더 많이 합니다.

일론 머스크는 2024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유세 현장에서도 'Occupy Mars(화성을 점령하)'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 AFP 연합뉴스

머스크는 물론 화성을 포기한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지난 2월 직원들에게 "우주 기반 데이터센터를 현실로 만드는 과정에서 얻는 역량이 달의 자생 기지와 화성 문명, 나아가 우주 확장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AI와 달 사업은 화성으로 가기 위한 중간 단계라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스페이스X의 대형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우선순위가 바뀐 것 아니냐는 평가가 계속 나옵니다. 이번 주 일부 투자자들이 텍사스·테네시 시설을 방문해 새 비전을 직접 듣는다고 합니다. 보통 기업은 상장 직전 핵심 사업을 뚜렷하게 보여주며 안정감을 강조하지만, 머스크는 정반대일 것이란 분석이 많습니다. '화성'이라는 먼 미래보다 'AI와 달'이라는, 당장 자금과 관심을 끌 수 있는 분야를 전면에 내세울 것이란 관측입니다. 한 투자운용사 대표는 "환각적인(hallucinogenic) 사업계획"이라고 꼬집기도 했습니다.

과거 머스크는 달 착륙을 '새로운 업적이 아니다'라고 평가절하했다고 합니다. 그랬던 그가 최근에는 "자생적으로 성장하는 달 도시 건설에 집중하겠다"고 했습니다. "화성 도시도 짓겠지만, 달이 더 빠르다"는 말도 했습니다. 물론 머스크는 일반인 예상을 뛰어넘는 뚝심으로, 불가능해 보였던 선언들을 끝내 이뤄낸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다만 화성에 대한 관심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