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이 개발 중인 고셔병 치료제(YH35995)를 FDA(미 식품의약국)가 희귀의약품으로 최근 지정했다. 고셔병은 특정 효소 결핍으로 물질대사에 이상이 생겨 노폐물이 몸에 쌓이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유전성 희귀질환이다. FDA 희귀의약품 지정은 환자 수가 적고 치료 옵션이 제한적인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제도다.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되면 임상시험 관련 세액 공제, FDA 심사 수수료 면제, 허가 승인 시점부터 최대 7년간 시장 독점권 등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 유한양행은 이번 희귀의약품 지정을 계기로 글로벌 임상 개발과 허가 전략을 체계화해 후속 개발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한양행이 올해로 창립 100주년을 맞았다. 일제강점기에 제대로 된 의약품을 구하지 못하는 서민이 다수이던 시절, 독립운동가 유일한(1895~1971) 박사가 "건강한 국민만이 잃었던 조국을 되찾을 수 있다"며 1926년에 세웠다.

◇'렉라자'로 이어지는 연구 성과

유한양행의 핵심 경쟁력은 지속적인 연구·개발(R&D) 투자다. 매년 매출의 10~20%를 연구 개발에 투입해왔다. 유한양행이 개발한 항암제 '렉라자'는 2021년 국산 신약 31호로 식약처 허가를 받았다. 2024년엔 리브리반트와 병용 요법으로 FDA(미 식품의약국) 승인을 받았다. 국산 항암제가 FDA 승인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유한양행은 렉라자 보험 급여 등재 전인 2023년 7월부터 12월까지 895명의 폐암 환자에게 무상으로 공급하는 '렉라자 조기 공급 프로그램(EAP)'을 진행했다.

렉라자 이후를 책임질 차세대 먹거리 발굴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유한양행은 항암·대사·면역 질환을 중심으로 파이프라인을 재편했다. 비만 및 대사 이상 관련 지방간염 치료제, 만성신장 질환 치료제 등을 중심으로 글로벌 임상 및 기술 수출을 추진 중이다. 또 기존 외부 협력(오픈 이노베이션) 방식에서 한 걸음 나아가 직접 플랫폼 기술을 확보해 후보 물질을 자체 개발하는 비율을 높이고 있다.

◇유한양행과 '안티푸라민'

1919년 미국에서 서재필, 이승만, 조병옥 등이 낭독한 '한인 자유 대회' 결의문을 작성한 유일한은 고국으로 돌아오기 전 서재필 박사로부터 목각 판화를 선물 받았다. 버드나무가 새겨진 판화였다. 유일한의 성 '버들유'를 상징하는 동시에, 메마른 땅에도 깊게 뿌리 내리고 꺾여도 다시 자라는 버드나무 같은 존재가 되라는 당부였다. 유일한은 이 판화를 회사 로고로 삼고, 종로에서 유한양행을 시작했다. 회사 이름 '유한'은 자신의 성 유(柳)에 한국(韓國)의 앞자를 붙인 것이고, 양행은 외국과 무역하는 상사를 뜻한다.

유한양행은 1933년 '안티푸라민'을 출시했다. 자체 개발 1호 의약품이다. 당시엔 서민들이 상처에 된장을 바르거나 그을음을 묻히며 견디다 파상풍에 걸리는 일이 허다했다. 일본 제약사 의약품은 너무 비쌌던 탓이다. 유한양행은 '염증을 막아준다'는 뜻으로 'Anti'와 'inflame'을 합성해 '안티푸라민(Antiphlamine)'이라고 이름 붙였다. 글을 잘 모르는 서민들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뚜껑엔 간호사 그림도 새겨 넣었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유한양행은 1926년 창립 이후 신문에 종종 광고를 실었다. 제품 효능을 과장하는 기존 광고와 많이 달랐다. 1930년 8월 10일 조선일보 1면엔 '의사는 당신의 친우'라고 적힌 광고가 나왔다. 약을 반드시 전문가에게 진단을 받고 복용할 것을 권고하는 내용이다. 약품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광고였다. '의사를 찾아 상의하시고 복용하시오' '의사의 지도를 받으시라'는 광고 문구가 실렸다. 이른바 2000년 의약 분업 이후 정착된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표어의 원조(元祖)라고 할 수 있다.

유일한 박사는 국내 최초로 1936년 사원에게 자사주를 지급하는 '종업원 지주제'를 도입했다. 1969년엔 자녀에게 경영권을 승계하지 않는 전문 경영인 체제를 확립, 소유와 경영을 엄격히 분리했다. 이는 기업을 으레 가족에게 물려주던 당시 한국의 가족 경영 관행을 정면으로 돌파한 최초의 지배 구조 혁신으로 평가받는다.

1971년 그는 '모든 개인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유언을 남겼다. 유언장에서 장남에게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앞으로는 자립해서 살아가라'고 썼고, 딸에게는 '유한 중·고교 내 묘소 주변 땅 5000평을 상속한다. 이 땅에는 결코 울타리를 치지 말고 유한동산으로 꾸며 학생들이 마음껏 공부하며 노는 모습을 죽어서도 지켜볼 수 있게 하라'고 했다. 손녀에겐 대학 졸업까지의 학자금 1만달러만을 남겼다. 유한양행은 "유일한 박사 유지를 계승, 유한재단을 통해 장학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며 "1969년 창간한 건강 정보지 '건강의 벗'도 반세기 넘도록 무상 배포하며 ESG(환경·사회적 책무·기업 지배 구조 개선) 경영을 지속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