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그저 독특하게 털이 빠진 또 다른 원숭이 종(種)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던 영국의 동물학자 데즈먼드 모리스(Desmond Morris)가 지난 19일(현지 시각) 98세 나이로 별세했다. 모리스는 1967년 출간된 저서 '털 없는 원숭이(The Naked Ape)'에서 기술적 진보와 진화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은 여전히 근본적으로 원숭이와 유사하다고 주장해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다. 이 책은 한국어를 포함해 전 세계에서 23개 언어로 번역돼 2000만부 이상 팔렸다.
모리스는 동물학자로서 책과 방송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동시에 호안 미로와 함께 작품을 전시한 초현실주의 화가로도 성공했다. 그는 작년 영국 가디언지 인터뷰에서 "1948년에 그린 그림 한 점이 2년 전 5만 파운드(약 1억원) 이상에 팔렸다"며 "가장 아끼던 그림 중 하나여서 직접 사고 싶었는데 팔려버려서 화가 났다"고 말했다.
모리스의 아들인 제이슨은 20일 부고를 전하며 "아버지의 삶은 탐구와 호기심, 창의성의 연속이었다"며 "동물학자이자 인간 관찰가, 작가, 예술가였던 아버지는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고 추모했다.
◇"인간은 털 없는 원숭이 종"
1928년 영국 남서부 윌트셔에서 태어난 모리스는 1946년 영국 육군에 입대해, 윌트셔에 있는 치젤던 육군 사관학교에서 미술 강사로 근무했다. 2년간 병역 의무를 마친 후 1948년 스윈던 아트 센터에서 자신의 그림으로 첫 개인전을 열었고, 1950년에는 런던 갤러리에서 호안 미로와 함께 초현실주의 미술 전시회를 열었다.
동시에 과학자로서 경력도 쌓았다. 버밍엄대에서 동물학을 공부했고, 옥스퍼드대에서 청가시고기의 공격적인 짝짓기 춤을 관찰한 연구로 1954년 동물행동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학에서 조류의 행동을 연구하다가 1959년 런던 동물원의 동물학회 포유류 큐레이터가 돼 8년간 일했다.
그는 생전 동물학 연구를 담은 9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모리스는 '털 없는 원숭이'의 처음을 "오늘날 지구상에는 193종의 원숭이와 유인원이 살고 있다고 하며, 그 가운데 192종은 온몸에 털을 갖고 있고, 단 한 가지 별종이 있으니, 이른바 '호모 사피엔스'라고 자처하는 털 없는 원숭이가 그것이다"라고 시작했다.
그는 이 책에서 인간 고유의 특성은 다른 영장류보다 우월하지 않고 다만 생존을 위해 다르게 적응한 결과라고 해석했다. 예를 들어 다른 영장류 암컷은 배란기에만 짝짓기를 하지만 인간은 여성의 배란 여부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언제나 성관계가 가능하다. 모리스는 이를 두고 "다른 영장류에게 짝짓기는 오로지 번식을 위한 수단이지만, 인간은 서로 보상을 제공함으로써 공동 육아에 필요한 유대를 공고히 하는 진화적 장치"라고 설명했다. 그는 후속작으로 '인간 동물원'(1969), '맨워칭'(1977), '벌거벗은 남자'(1977) 등을 집필했다.
◇동물학자와 화가 경력 결합해 유명세
그는 동물학자이자 화가인 자신의 경력을 결합한 전시회로도 유명했다. 1957년 런던 현대미술관에서 콩고라는 침팬지가 그린 작품들을 전시했다. 모리스는 콩고의 그림을 통해 예술적 표현이 오로지 인간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말했다. 그가 '털 없는 원숭이'에서 주장한 내용 그대로이다. 그는 1958년 런던의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열린 '잃어버린 이미지(The Lost Image)'라는 전시회에서 유아와 성인, 유인원이 만든 이미지를 비교하기도 했다.
모리스는 나중에는 동물을 소개하는 TV 방송 진행자로서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그는 1956년 ITV 그라나다 방송국의 자연 다큐멘터리 시리즈 '동물원 시간(Zoo Time)'의 진행자로 발탁되었다. 동물원 직원과 동물 연구자들이 출연한 이 프로그램은 1967년까지 방영됐다. 1965년 BBC에서 '동물 세계의 삶(Life in the Animal World)'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며, '맨워칭(Manwatching, 1977)', 'TV와 자연사(TV and Natural History, 1986)', '인간 동물(The Human Animal, 1994)' 등 BBC의 다큐멘터리 다수를 진행했다.
아들이 부고에서 말한 '인간 관찰자(manwatcher)'는 모리스의 연구를 함축하는 단어이다. 그는 새나 원숭이를 관찰하듯 인간의 행동을 연구했다. 그는 아들에게 끌려 축구 경기에 갔다가 팬들의 열정에 매료됐다. 그는 과학적 통찰력을 바탕으로 구호와 박수 치기의 의식에 대해 글을 썼다. 모리스는 "팬들의 박수치기는 남성들의 경기장 내 과시 행위"라고 해석했다.
나중에 그는 지중해 지역 사람들이 왜 그렇게 표현력이 풍부한 몸짓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당시 지인이 "마치 조류 관찰자가 새를 바라보듯 사람들을 바라본다"고 하자 모리스는 "나를 '인간 관찰자'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라고 말했다. 이제 별이 된 동물학자, 화가는 하늘에서도 인간을 관찰하며 그리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