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출간한 '털 없는 원숭이(The Naked Ape)'의 저자로 유명한 영국의 동물학자 데즈먼드 모리스가 98세로 지난 19일(현지 시각) 세상을 떠났다. 모리스는 인간을 '섹시한 유인원'으로 규정해 세계적으로 논란을 불렀다.
그의 대표 저서 '털 없는 원숭이' 머리말은 "지구상에는 193종의 원숭이와 유인원이 살고 있다. 192종은 온몸이 털로 덮여 있고, 단 한 가지 별종이 있으니 이른바 호모 사피엔스라고 자처하는 털 없는 원숭이다"로 시작한다. 그는 인간을 동물학자의 시선으로 관찰했다. 도박은 수렵 본능의 현대적 발현이고, 칵테일 파티는 원숭이의 '그루밍(털 고르기)'을 대체한 행동으로 보는 식이었다.
그는 인간의 행동은 문화가 아니라 진화와 본능이 먼저 만든 결과라고 주장했다. 인간은 진화한 유인원이라는 관점을 담은 '털 없는 원숭이'는 종교계의 격렬한 반발을 불렀고, 실제로 로마 가톨릭교회의 금서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학계도 모리스의 주장에 대해 "지나친 단순화"라고 비판했지만 대중은 열광했다. '털 없는 원숭이'는 27개 언어로 번역돼 세계적으로 약 2000만 부가 팔렸다.
이 책의 대성공으로 단숨에 부자가 된 모리스는 몰타로 이주해 27개 방이 있는 대저택과 롤스로이스 2대, 요트를 구입하며 초호화 생활을 했다. 어머니가 저축해야 한다고 말렸지만, "그냥 쌓아두기만 하는 돈은 삶의 생기를 앗아간다"며 듣지 않았다.
결국 5년 만에 재산을 탕진한 그는 영국으로 돌아와 옥스퍼드대 연구원 자리를 잡았다. 이후에는 '맨워칭' '축구 종족' 등을 출간하며 왕성한 저술 활동을 이어갔다.
앞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성공하기 전에는 1956년 TV 프로그램 '주 타임(Zoo Time)'의 진행을 맡으면서 방송 경력을 쌓았다. 생방송에서 호랑이가 짝짓기를 하고, 모리스가 전갈에 쏘이는 등 돌발 상황으로 화제를 낳으며 유명해졌다. 1959년부터는 런던 동물원에서 포유류 담당 역대 최연소 큐레이터로 8년간 근무했다.
그는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허무는 실험도 했다. 동물원의 침팬지 '콩고'에게 붓을 쥐여준 일화는 유명하다. 콩고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모리스는 예술적 표현이 인간 고유의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콩고의 작품은 영국 현대예술연구소에서 전시됐고, 파블로 피카소가 한 점을 소장했다. 2005년 경매에서 콩고의 그림은 1만4000파운드(약 2700만원)에 낙찰됐다.
모리스 본인도 평생 화가로 활동했다. 젊은 시절 런던 갤러리에서 초현실주의 화가 호안 미로와 공동 전시회를 열었고, 50회 이상 개인전을 세계 각지에서 개최했다. 그는 "나는 딴짓을 너무 많이 해온 탓에 변변치 않은 화가이다"라고 자평했다.
모리스는 2018년 배우자가 세상을 떠나자 아일랜드로 이주해 죽는 날까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마지막 저서는 2024년 출간한 '101인의 초현실주의자'다. 스스로를 "늙은 어린이"라고 불렀던 '털 없는 원숭이'는 이렇게 98년의 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