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킨슨병은 뇌의 신경세포가 점차 손상되면서 몸이 떨리거나 움직임이 느려지고, 근육이 뻣뻣해지는 대표적인 신경퇴행성 질환이다. 보통 증상이 나타난 뒤 진단되는 경우가 많아, 병의 진행을 늦추려면 더 이른 단계에서 위험 신호를 찾는 일이 중요하다. 이 가운데 장 속 미생물을 분석해 파킨슨병 위험을 증상 전에 알아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연구진은 파킨슨병 환자와 건강한 사람, 그리고 유전적으로 파킨슨병 위험이 높은 사람들의 장내 미생물을 비교한 결과를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신'에 21일 게재했다.
장내 미생물은 우리 몸의 소화기관에 사는 세균과 미생물 집단을 말한다. 흔히 '장내 미생물군(마이크로바이옴)'이라고 부르며, 음식 소화뿐 아니라 면역과 염증 조절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장과 뇌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장-뇌 축' 개념도 주목받고 있다. 장의 상태가 뇌 건강에 영향을 주고, 반대로 뇌의 변화도 장에 반영된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파킨슨병과 장내 미생물 사이의 관계를 살피기 위해 영국과 이탈리아 참가자 464명의 자료와 대변 시료를 분석했다. 그 결과, 파킨슨병 환자와 건강한 대조군을 비교했을 때 장내 미생물 176종 양이 뚜렷하게 달랐다.
특히 GBA1 유전자 변이를 가진 고위험군에서도 장내 미생물 176종 가운데 142종에서 비슷한 변화가 나타났다. GBA1 변이는 파킨슨병 발병 위험을 최대 30배까지 높이는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즉, 병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전부터 장 속 환경에 전조 신호가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결과는 영국과 한국, 튀르키예 참가자 957명을 포함한 추가 검증에서도 확인됐다. 연구진은 이를 두고 "파킨슨병 위험이 장에서 먼저 포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결과"라며 "이런 차이를 활용하면 앞으로 파킨슨병 위험을 조기에 가려내는 검사법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참가자들의 식습관 자료를 함께 분석했더니, 더 균형 잡히고 다양한 식단을 가진 사람일수록 파킨슨병 위험 신호를 보이는 장내 미생물 패턴을 가질 가능성이 낮다는 증거도 나왔다. 연구진은 식단 조절이 파킨슨병 예방에 도움이 될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덧붙였다.
연구를 이끈 스타니슬라프 두스코 에를리히(Stanislav Dusko Ehrlich) UCL 명예교수는 "장내 미생물 분석을 통해 파킨슨병 발병 위험이 있는 사람을 찾아내고, 식단 조절 같은 방법으로 발병 위험을 낮추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라며 "장내 미생물 검사가 조기진단뿐 아니라 새로운 예방법이나 치료 전략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참고 자료
Nature Medicine(2026), DOI: https://doi.org/10.1038/s41591-026-043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