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오는 연구 과제를 보면 이름에 'AI'를 꼭 넣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지난 9일 전남 여수엑스포컨벤션센터에선 '인공지능(AI)과 생물공학의 융합'을 주제로 열린 한국생물공학회 춘계학술대회가 열렸다. 이날 생물공학 분야에서 활약 중인 신진 과학자들은 "AI가 연구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하지만 "모든 연구가 반드시AI를 엮어야 하는 건 아니다"라는 말도 나왔다.정부 연구개발(R&D)지원이 'AI'라는 키워드에 지나치게 쏠리면서 수십년간 축적된 기초 연구가 오히려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였다.
◇"AI 비중 낮은 연구도 지원 필요"
이날 학회에 참석한 박준형 한국화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이진규 동아대 교수,임사무엘 연세대 교수, 김준우 인하대 교수 등 신진 연구자 4명은 "(기초연구 분야에 대한 투자가)소홀해지지 않도록 정부가 균형을 잘 맞춰줬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임 교수는 "과제 제안서에 AI 키워드가 굉장히 중요하게 인식되다 보니, AI 관련 제안을 반드시 해야 선정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며 "꼭 필요한 분야는 집중적으로 지원하되 상대적으로 AI 비중이 작아도 가능한 연구도 지속해 뒷받침해야 한다"고 했다.
세포에서 분비되는 유효물질을 연구하는 이 교수는 "세포 종류마다, 인공조직 규모마다 다른 방대한 데이터를 스크리닝하는 데 AI가 유용하다"면서도 "결국 사람 몸이나 동물에 이식해 실제 재생 효과를 봐야 하기 때문에 AI 분석만으로 연구가 완성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는 "AI를 분석 도구로 쓰는 데는 동의하지만, 기존에 해오던 재생의학 이식재 개발 같은 기초연구도 충분히 살려줘야 하지 않나"라고 했다.
박 연구원은 "연구 과제 RFP(제안요청서)를 보면 실패할 연구는 아예 안 하는 것도 큰 문제"라고 했다. AI를 훈련시킬 때 실패 데이터가 함께 들어가는 게 중요한데, 정작 실패 데이터를 모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그는 "성공 데이터처럼 실패 데이터도 데이터베이스화해 AI 훈련에 쓰도록 하는 과제가 나와야 한다"고 했다. 성공이 담보된 과제 위주로만 공모가 이뤄지는 현실이 역설적으로 AI 경쟁력을 깎아먹고 있다는 얘기다.
◇"AI 쓰고 싶어도 못 쓰는 현실도"
AI를 활용하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환경도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 교수는 "정보통신이나 전자기기 분야는 데이터를 얻기 수월해 머신러닝을 적용하기 쉽지만, 바이오 업계는 데이터가 너무 적다"고 했다. 정부가 AI 정책을 일률적으로 밀어붙이기보다,분야 특성을 고려한 세분화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평가 지표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기업에서 10년간 근무하다 학계로 옮긴 김 교수는 "AI 예측 정확도나 안정성 같은 평가 지표가 부처마다, 심지어 같은 부처 내 과제마다 제각각이고 표준이 없다"고 했다. 그는 "생산 현장 제어에는 정확도 95% 이상이 필요하지만, 최적화 탐색 과제는 오차율 20%도 허용된다"며 "분야별 기준이 완전히 다른데, 이를 뭉뚱그려 평가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정부가 나서서 분야별로 AI 관련 성과나 안정성을 평가하는 기준을 표준화해야 객관적 평가에 기반한 연구 지원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신진 과학자들은 연구 환경 전반에 대한 고충도 털어놨다.임 교수는 "삭감됐던 R&D 예산이 복구되는 기조이긴 하지만, 그동안 임용된 실력 있는 교수들이 연구비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며 "이 기조가 몇 년간 유지돼 그동안 연구를 못 했던 신진 연구자들이 연구비를 수주할 기회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 교수는"지방 대학과 대학원생들이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는 과제가 더 많이 생겼으면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기업에 있다가)학교에 와보니 기반 시설이 오래되고 공간도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걸 크게 느낀다"며 "결국 학생들에게 피해가 돌아가는 문제인 만큼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