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 문어는 눈으로 상대를 보지 않고도 다리 끝의 감각만으로 '노룩(no look) 짝짓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비결은 '오른쪽 셋째 다리'에 있었다.
미국 하버드대와 UC샌디에이고 공동 연구팀이 두족류 감각 체계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사실을 발견하고 논문을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최근 발표했다. 과학계에선 그동안 수컷 문어가 생식 활동에 특정한 다리를 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짝을 어떻게 알아보고 짝짓기하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연구팀은 수컷 문어의 8개 다리 중에서도 오른쪽 셋째 다리 '헥토코틸루스'에 주목했다. 이 다리는 다른 다리와 달리 끝부분에 빨판이 없고, 매끄러운 홈이 파여 있어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수컷 문어는 이 다리를 평소엔 거의 쓰지 않고 몸 안쪽에 돌돌 감아놓는다. 먹이를 잡을 때도 거의 쓰지 않는다.
연구팀은 수컷 문어가 이 다리를 언제 쓰는지 알아보기 위해 독특한 실험을 진행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수컷 문어와 암컷 문어를 칸막이가 있는 수조 양쪽에 각각 넣었다. 이때 칸막이엔 다리 하나 정도 통과할 수 있는 구멍을 뚫어 놓았다.
이 상태에서 연구팀은 수조 안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체나 새우 등을 넣어봤다. 암컷은 이때 8개의 다리를 골고루 사용해 물체나 먹이를 탐색했지만, 수컷은 헥토코틸루스를 제외한 7개의 다리만 내밀어 물체를 건드렸고, 세 번째 다리는 계속 몸 안쪽에 말아넣고 있었다.
수컷이 이 다리를 움직인 것은 옆 칸막이에 암컷 문어가 들어왔을 때다. 수컷은 칸막이 구멍으로 오른쪽 세 번째 다리를 정확히 뻗어 어둠 속에서도 암컷을 찾아냈고, 정확히 생식기관에 이 다리를 넣어 짝짓기를 했다. 반면 반대편에 또다른 수컷 문어를 넣었을 땐 다리를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단순히 다리가 닿아서 하는 행동이 아니라 상대를 제대로 구별하고 움직였다는 뜻이다.
연구팀은 수컷 문어가 암컷 몸에서 나오는 '프로게스테론'이라는 호르몬을 오른쪽 세 번째 다리로 감지해 내고 다리를 뻗는 것이라고 봤다. 이 호르몬을 감지하면 뇌의 명령 없이도 다리가 스스로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정자 꾸러미를 방출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암컷 대신 프로게스테론을 입힌 튜브를 넣었을 때도 수컷은 이를 암컷처럼 인식하고 탐색 행동을 보였다. 다른 화학물질이 묻은 경우에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연구팀은 "수컷 문어가 앞을 볼 수 없을 때도 화학적 감각만으로 상대를 인식하고, 몸 전체가 접촉하지 않고도 교미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