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알라메다의 한 양조장 주차장. 맥주 탱크 옆에 놓인 대형 금속 장비가 파이프로 공기를 빨아들인다. 이렇게 포집한 이산화탄소는 곧바로 정제돼 맥주 속 기포가 된다. 공기 중에서 붙잡은 이산화탄소로 맥주를 만드는 시대가 열린 셈이다.
이 양조장 '알마낙(Almanac)'은 이산화탄소를 공기에서 직접 포집하는 장비를 설치하고, 이를 맥주 제조에 활용하고 있다. 포집된 이산화탄소는 현장에서 액화·정제 과정을 거쳐 식품 등급으로 만들어지고, 맥주 탄산을 만드는 데 쓰인다. 현재 전체 생산량의 약 20%에 적용되고 있으며, 향후 100%로 확대하는 것이 목표다.
◇맥주 거품 된 공기 속 CO₂
이 기술은 '직접 공기 포집(DAC·Direct Air Capture)'으로, 공기 중에 0.04% 수준으로 희박하게 존재하는 이산화탄소를 화학적으로 흡수해 분리하는 방식이다. 그동안은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지하에 저장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지만, 최근에는 이를 곧바로 산업 원료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특히 식음료 산업에서의 활용은 상징성이 크다. 맥주와 탄산음료 제조에는 이산화탄소가 필수적이지만, 현재는 비료·에탄올 공정 등에서 부수적으로 발생한 이산화탄소를 모아 쓰는 구조다. 이 때문에 공급이 불안정하고 가격 변동도 크다. 반면 현장에서 직접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사용할 경우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고 비용도 15~20% 절감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DAC 기업 '에어캡처(Aircapture)'가 소형 포집 장비로 현장에서 이산화탄소를 생산·공급하는 방식을 제안했고, 안정적인 이산화탄소 확보가 필요했던 알마낙 양조장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도입이 이뤄졌다. 이 방식은 기존 대규모 플랜트와 달리 수요가 있는 곳에 장비를 직접 설치해 '현장 생산·현장 소비'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장비를 대형화하는 대신 동일한 모듈을 여러 곳에 배치하는 '분산형 DAC' 모델로, 물류 비용을 줄이고 공급망 불안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세계 최대 맥주 기업 '안호이저부시 인베브(AB InBev)'도 올해 일부 양조장에 에어캡처의 이산화탄소 포집 기술을 도입할 예정이다.
◇온실가스의 변신..다이아몬드, 운동화도 활용
탄소 포집·활용 기술의 적용 범위도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미국의 다이아몬드 기업 '이더'는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메탄으로 전환한 뒤 증착 공정을 거쳐 다이아몬드를 생산하고 있다. '란자테크'는 이산화탄소를 에탄올로 바꾼 뒤 플라스틱 원료로 가공해 운동화 소재 등에 활용하는 기술을 선보였다. '카본 엔지니어링'은 포집한 이산화탄소와 수소를 반응시켜 합성 연료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콘크리트에 이산화탄소를 주입해 강도를 높이는 방식은 이미 상용화 단계에 들어섰다.
탄소를 포집해 저장하는 데 머물렀던 기술이 이제는 바로 소비되고 판매되는 산업 원료로 바뀌고 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과거에는 온실가스를 제거하거나 저장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이를 새로운 원자재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산업 구조가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맥주·탄산음료 산업처럼 이산화탄소를 지속적으로 소비해야 하는 분야에서는 효과가 크다. 업계에서는 이번 양조장 모델이 향후 식품·농업·온실 재배 등 다양한 분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높은 비용·낮은 효율… 넘어야 할 산도 많아
다만 한계도 여전하다. 공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낮아 포집 효율이 떨어지고, 이를 분리·정제하는 데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DAC를 통한 이산화탄소 포집 비용은 톤당 600~1000달러 수준으로, 200달러 이하로 내려가야 본격적인 시장 확산이 가능할 것으로 분석된다.
대규모 탄소 포집 시설은 건설·운영 비용이 많이 들고 정책 변화의 영향도 크게 받는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최근 일부 프로젝트가 지연되거나 축소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대형 설비 대신 소형 장비를 여러 곳에 분산 배치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확대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알마낙 양조장이 대표적 예다. 일각에서는 알마낙 같은 분산형 모델도 전력 소비와 설비 효율이 개선되지 않으면 경제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업계는 탄소 포집 기술이 대형 인프라 중심에서 소형 및 현장형 모델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변화로 평가한다. 줄여야 할 대기 오염 물질 취급을 받던 이산화탄소가 '쓸 수 있는 자원'으로 주목받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