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 주인 간 유추된 가족 관계와 가족 순장이 된 경우들을 도식화한 가계도./서울대

삼국시대 신라 사회가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강한 혈연 중심 구조를 갖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유전학적 증거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가까운 친족끼리 혼인한 흔적과 가족 단위 순장 정황까지 드러나면서, 당시 지역 지배층 사회의 내부 결속 방식에 대한 해석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서울대와 영남대, 세종대,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 등이 참여한 국내외 공동 연구진은 경북 경산 임당·조영 고분군에서 출토된 고대 인골 78명의 유전체를 분석한 결과를 8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했다.

고대 사회의 가족과 혼인 풍습은 오랫동안 문헌과 유물에 의존해 추정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고고학 유적에서 나온 뼈와 치아의 디옥시리보핵산(DNA)을 분석하는 고유전체 연구가 발전하면서, 수천 년 전 사람들 사이의 실제 친족 관계를 보다 정밀하게 복원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동아시아, 특히 고대 한국 사회의 친족과 혼인 풍습을 유전체로 본격적으로 살핀 연구는 지금까지 거의 없었다.

이번 조사 대상인 임당·조영 고분군은 4세기부터 6세기 사이 약 100년에 걸쳐 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는 1600기 이상의 무덤과 259명의 인골이 확인됐다. 연구진은 무덤에서 확인된 무덤 주인 등 총 78명의 유골에서 고유전체를 확보해, 이들 사이의 혈연 관계를 추적했다.

이를 분석한 결과, 11쌍의 1차 친족 관계와 23쌍의 2차 친족 관계를 확인했다. 여기에 3차 친족 이상으로 보이는 친척 관계도 20쌍 넘게 추정됐다. 고분군에 묻힌 이들이 단순히 같은 지역 구성원이 아니라, 오랜 세월 서로 얽힌 거대한 혈연 네트워크 안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여기서 1차 친족은 부모와 자식, 친형제자매처럼 가장 가까운 관계를 뜻한다. 2차 친족은 조부모와 손자녀, 삼촌과 조카, 이복형제자매 등이 해당하고, 3차 친족은 사촌 관계처럼 조금 더 먼 혈연을 가리킨다.

연구진은 5명의 유전체에서 부모가 가까운 친족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결과를 확인했다고도 밝혔다. 특히 이런 양상은 무덤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인물뿐 아니라, 함께 묻힌 순장 희생자에게서도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를 두고 당시 집단 내부 혼인이 일정한 관행으로 존재했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단서로 해석했다.

이번 연구는 순장 풍습과 관련해서도 주목할 만한 단서를 내놨다. 순장 희생자 집단 가운데 부모와 자식이 같은 무덤에 함께 묻힌 사례가 유전학적으로 확인된 것이다. 연구진은 이를 가족 단위 순장을 유전학적으로 입증한 첫 사례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런 점을 토대로 해당 묘역이 단순한 공동 매장 공간이 아니라, 특정 지역 지배층 가문이 세대를 이어 사용한 묘역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같은 무덤 또는 인접한 무덤에서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 등 직계 가족이 함께 확인된 사례는 당시 사회가 강한 혈연 중심 질서로 운영됐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정치적·사회적 지위의 계승 역시 이런 친족 기반 네트워크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을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다만 연구진은 "전체 매장 인구에 비해 유전체 분석에 성공한 인원이 제한적이어서, 이번 결과를 곧바로 당시 신라 사회 전체로 일반화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신중한 해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오지원 연세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는 "단일 유적에서 78개체, 13개 가족 족보를 복원한 규모 자체가 한국 고고유전학의 이정표"라며 "향후 경주 왕경의 대형 고분이나 고구려·백제 지역으로 확장된다면, 골품제의 유전적 실체와 삼국 간 혼인 관행 차이를 직접 검증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참고 자료

Science Advances(2026), DOI: https://doi.org/10.1126/sciadv.ady8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