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한 장면. 단종은 세조를 상대로 다시 왕권을 되찾으려 도전했지만, 결국 세에서 밀려 실패했다. /뉴시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로 다시 주목받는 1453년 계유정난. 단종이 삼촌인 수양대군(세조)에게 왕권을 빼앗긴 이 사건의 권력 구조를 조선시대 관료 데이터에 기반해 분석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구진은 관료 데이터를 바탕으로 조선이 400년간 유지된 관료 시스템이 붕괴하면서 몰락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KAIST 문화기술대학원 박주용 교수와 홍콩침례대 공동 연구팀은 조선왕조실록과 과거(科擧) 급제자 명단을 분석해 조선시대 관료 1만4638명의 경력과 관계망을 데이터로 복원했다고 1일 밝혔다. 연구진은 관직 높낮이(정1품~종9품)와 재직 기간을 종합한 '총성공지표'를 만들어 각 관료의 성공 정도를 측정했다. 높은 자리에서 오래 머물수록 점수가 높아지는 방식이다.

분석 결과 조선 건국 이후 약 400년 동안 특정 관직이 특정인이나 특정 가문에 집중되기보다는 여러 사람에게 비교적 골고루 나눠진 것으로 조사됐다. 성공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 계수는 약 0.52 수준으로 큰 변화 없이 유지됐다. 연구진은 "일정 수준의 공정성과 사회적 이동성이 유지되는 '정상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안동 김씨, 풍양 조씨 등 특정 가문이 과거 급제와 고위 관직을 집중적으로 차지하면서 관료 사회의 불평등이 급격히 확대됐다. 19세기 들어 지니 계수는 0.78까지 치솟았고, 주요 권력 가문 출신이 요직을 차지하는 비율도 약 2배 증가했다. 연구진은 이를 공정한 인재 등용 시스템의 붕괴로 해석했다. 실력보다 가문과 인맥이 작동하는 구조로 변하면서 관료 체계의 균형이 깨졌다는 것이다.

계유정난 이후 세조와 가까운 관료는 공신이 되고(빨강), 안평대군과 가까운 관료는 숙청(파랑)된 모습을 복원한 네트워크 분석 결과. /KAIST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1453년 계유정난은 이례적 사건이다. 계유정난은 수양대군이 조카인 단종의 측근인 김종서, 황보인 등을 살해하고 정권을 장악한 정변이다. 당시 단종, 수양대군, 안평대군(수양대군의 동생)과 교류한 인물들의 네트워크를 구현해 분석한 결과, 실제로 세조와 가까웠던 관료들은 정난 이후 공신으로 올라섰고, 안평대군 측 인물들은 대부분 숙청된 것으로 나타났다. 권력이 급변하는 상황에선 개인의 능력보다 누구와 연결돼 있었는지가 관직의 향방을 갈랐다는 의미다. 결국 단종은 관료 네트워크에서 밀리면서 왕권을 되찾는 데 실패한 셈이다.

조선은 과거시험을 통해 인재를 선발하는 '능력 중심 체제'로 알려져 있지만, 등용 이후의 현실은 달랐다. 연구에 따르면, 과거시험 성적과 이후 관료 경력 간 상관계수는 0.089로 매우 낮았다. 시험 성적이 출세를 보장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또 과거 급제자 4명 중 1명은 실록에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권력 핵심과 거리가 먼 '주변부' 관료가 상당수 존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연구진은 이번 결과가 조선의 몰락이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장기적인 구조 변화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조선은 특정 사건이 아니라 제도의 변화 속에서 쇠퇴했다"며 "인재 선발과 권력 분배 구조가 왜곡되면 사회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