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 자연과학캠퍼스 연구실에서 만난 마틴 슈타이네거 생물정보학과 교수는 "연구자가 스스로 파고드는 연구에서 노벨상급 혁신이 나온다"고 했다. /장련성 기자

"밤 9시 카페에 가서 새벽까지 연구하고, 국밥 한 그릇 먹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지난 19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캠퍼스에서 만난 마틴 슈타이네거(41) 생물정보학과 교수는 한국에 정착한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이런 생활이 가능한 안전한 환경이 연구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독일 출신인 그는 단백질 구조 예측 인공지능(AI) '알파폴드2' 논문에 유일한 외부 저자로 참여한 연구자다. 알파고 개발사 구글 딥마인드가 만든 이 기술은 질병과 노화 연구의 핵심인 단백질의 복잡한 구조를 빠르고 정확하게 예측해내며 생명과학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성과는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CEO)와 존 점퍼 연구원의 2024년 노벨화학상으로 이어졌다.

슈타이네거 교수 역시 이 흐름 위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최근 기존보다 최대 1000배 빠른 단백질 구조 분석 소프트웨어 '폴드메이슨'을 개발하며 'K-알파폴드'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13일 국내 최고 권위 의학상 중 하나인 아산의학상 '젊은 의학자' 부문을 수상했다.

연구자로서 그의 출발은 평탄하지 않았다. 독일에서 대학 진학이 어려운 직업학교 트랙에 배정됐다. 하지만 컴퓨터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전문 기술 학교를 거쳐 컨설팅 회사에 취직했고, 25세에 대학에 진학했다. 이후 관심 분야를 살려 학업에 집중한 그는 뮌헨공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연구를 이어갔다. 그는 "초기 교육에서 뒤처졌다고 끝이 아니다"라며 "흥미를 느끼는 분야를 꾸준히 파고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2020년 서울대 교수로 부임하면서 한국에 왔다. 처음엔 1년 정도 머물 생각이었다고 한다. 외국인으로서 연구비 지원을 받는 데 보이지 않는 장벽도 있었다. 하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투자와 뛰어난 학생들이 있었고,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 덕분에 한국 정착을 결정했다. 한국인 여성과 결혼도 했다.

슈타이네거 교수는 연구자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고, 정부가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게 연구 성과를 내는 핵심 요소라고 강조했다. 그는 "노벨상은 위에서 정해주는 연구에서 나오지 않는다"며 "연구자가 스스로 파고드는 연구에서 혁신이 나온다"고 했다.

정부 연구·개발(R&D) 과제는 정부가 주제를 정하는 톱다운(하향식)과 연구자가 원하는 주제를 정하는 보텀업(상향식) 방식이 있다. 연구 현장에서는 보텀업 지원에 대한 선호도가 높지만, 일각에서는 성과를 보장하지 못하는 불확실한 투자에 예산만 낭비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슈타이네거 교수는 "독일이나 일본에서 노벨상 많이 나오는 이유는 연구자가 호기심을 좇아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게 지원하는 보텀업 과제 덕분"이라고 했다. 그는 "당장은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몇 년 뒤 수십만 번 인용될 연구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투자"라고 말했다. 그는 젊은 연구자들에게도 "행정 업무나 조직 문화에 눌리지 말고 '아니오'라고 말할 용기가 필요하다"며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AI 시대 자녀 교육에 대해서도 "AI가 인간보다 더 똑똑해질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단순 암기력은 점점 중요성이 떨어지고 지식과 경험을 연결해 내는 능력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자녀가 진정으로 흥미를 느끼는 분야를 찾고 그 열정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