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몬트리올대 질 브라사르 교수(왼쪽)와 미국 IBM리서치의 찰스 베넷 연구원. /튜링상 홈페이지

컴퓨터 과학계 노벨상으로 통하는 튜링상이 올해 처음으로 양자 과학 연구자들에게 돌아갔다. 한때 물리학의 변방으로 여겨졌던 양자 정보 연구가 이제 인공지능(AI) 이후 차세대 기술로 공식 인정받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컴퓨터학회(ACM)는 캐나다 몬트리올대 질 브라사르 교수와 미국 IBM리서치의 찰스 H. 베넷 IBM펠로우를 2025년 A.M. 튜링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18일(현지 시각) 밝혔다. ACM은 두 사람이 "양자 정보 과학의 기초를 세우고, 안전한 통신과 컴퓨팅을 바꾸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튜링상은 ACM이 매년 수여하는 컴퓨터 과학 분야 최고 권위의 상이다. 컴퓨팅의 수학적 기초를 세운 영국 수학자 앨런 튜링의 이름을 따 제정됐다. 구글이 후원하는 상금은 100만달러(약 15억원)다.

두 사람은 양자 과학 분야의 개척자로 통한다. 이들의 인연은 1979년 푸에르토리코 한 학회에서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해 1984년 발표한 '양자 암호키' 협업으로 이어졌다. 양자 암호키는 두 사람의 대표적 업적으로, 양자역학을 이용해 누군가 중간에서 훔쳐보거나 복제하려 하면 바로 흔적이 남아 도청 사실이 드러나게 하는 기술이다. 암호의 안전성이 계산의 복잡성이 아니라 물리 법칙 자체에 의해 보장된다는 점에서 당시로선 파격적인 발상이었다. 이 개념은 오늘날 양자암호통신의 출발점으로 꼽힌다.

1993년에는 양자 원격 전송 개념 정립에도 기여했다. 공상과학 영화처럼 사람이나 물체를 옮기는 기술은 아니지만, 양자컴퓨터 내부에서 정보를 전달하거나 서로 다른 양자컴퓨터 사이를 연결하는 핵심 기술로 쓰인다. 이후 관련 실험 연구가 이어지면서 양자정보과학이 본격 발전했고, 이런 흐름은 알랭 아스페, 존 F. 클라우저, 안톤 차일링거의 2022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으로도 이어졌다.

학계는 이번 수상의 상징성이 크다고 본다. 지난해 튜링상은 AI의 핵심 기술인 강화 학습의 개념과 알고리즘 토대를 닦은 미국 매사추세츠대 애머스트 캠퍼스의 앤드루 바토 명예교수와 캐나다 앨버타대의 리처드 서턴 교수에게 돌아갔다. 불과 1년 만에 수상 분야의 무게 중심이 AI에서 양자정보로 이동한 것이다. 아직 범용 양자컴퓨터와 양자인터넷이 완전한 상용화 단계에 이르진 못했지만, 핵심 원리는 이미 산업과 연구의 기반 기술이 됐다. 최근 각국 정부와 빅테크도 양자기술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브라사르는 "강력한 양자컴퓨터의 등장이 머지않았다는 점은 더 이상 의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