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남부 말라가 지역의 올리브 농장. 얼핏 보면 올리브나무가 상처 치료를 받는 듯하다. 줄기와 잎 곳곳에 얇은 금속과 필름이 붙어 있다. 나무가 수분이 부족한지, 스트레스를 받는지 포착하는 센서와 AI(인공지능) 칩이다. 사람으로 치면 산소 포화도, 심박수 등을 측정할 수 있는 스마트링을 끼고 있는 셈이다. KAIST가 소셜인프라테크와 이테리암 등 한국·스페인 기업과 손잡고 추진 중인 구상 가운데 일부다.

세계 최대 올리브 생산국 스페인의 올리브 수확량과 품질이 기후변화 여파로 눈에 띄게 낮아지자, 한국과 스페인 국제 공동 연구팀이 올리브나무 살리기 프로젝트에 나선 것이다. 제민규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는 "토양과 기상 등 간접 지표로 식물의 상태를 예측했던 기존 기술과 달리, 웨어러블(wearable) 기술은 식물에서 직접 측정한 데이터로 실시간 상태를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고 했다.

◇'지뢰 찾는 시금치' 계기로 확산

식물을 센서로 활용하려는 시도는 약 10년 전부터 부쩍 늘었다. 당시 MIT(매사추세츠공대) 연구팀이 선보인 '지뢰 찾는 시금치'가 주목받았다. 시금치 잎에 삽입한 탄소나노튜브 센서가 뿌리로 흡수된 폭발물 성분을 감지하면 근적외선 형광 신호를 내고, 이를 적외선 카메라와 소형 컴퓨터가 포착해 사용자에게 알리는 방식이다. 관련 기술은 최근 '웨어러블 센서' 형태로 진화해 줄기의 미세한 팽창과 수축, 잎의 온도 변화 등 식물 자체가 내는 신호를 읽는다. 습도와 빛을 비롯해 주변 환경을 종합적으로 측정하고 분석해 식물이 얼마나 물을 필요로 하는지, 스트레스를 어느 정도 받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굴이 단체로 입 다물면 비상?

연간 약 1억~2억개의 굴이 생산되는 호주에서는 굴 껍데기에 센서를 부착해 수질 변화를 실시간으로 감지하는 '동물 웨어러블' 기술이 적용되고 있다. 굴 생산액(출하 기준)이 1억달러(약 1500억원)에 달하는 산업에 생체 센서가 접목된 사례다.

굴은 수질이 나빠지거나 독성 물질이 유입되면 즉각 껍데기를 닫는 습성이 있다. 수백 마리 굴이 동시에 이런 반응을 보이면 수질 오염이 시작됐다는 신호다. 호주 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CSIRO)는 굴에 센서를 붙여 껍데기 개폐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양식장 오염 징후를 포착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초소형 센서들을 굴에 부착해 생리 변화와 껍데기 벌어짐 등 생체 데이터를 생성하는 것이다. 이는 가슴, 손목, 발목 등에 전극을 붙이고 심장의 전기 신호를 측정하는 인간의 심전도 검사를 연상시킨다.

재난 현장 탐색과 구조에 쓰기 위해 곤충을 무선으로 조종하는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 연구팀은 마다가스카르 바퀴벌레에 배낭형 무선 제어 장치와 태양전지를 부착해 원격 조종하는 기술을 선보였다. 바퀴벌레 복부 끝의 감각 기관인 꼬리털에 전기 자극을 가해 특정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생명체 자체를 '움직이는 센서'로 활용하려는 시도다.

◇동식물 데이터 위·변조 방지 필요

동식물 웨어러블 기술이 확산되면서 관련 기술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식물의 생장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장기간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플렉서블(flexible·유연한) 센서가 대표적이다.

다양한 동식물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현장에서 바로 분석하는 엣지 AI와, 데이터 위·변조를 막는 블록체인 기술의 결합도 시도되고 있다. 실제로 KAIST와 소셜인프라테크 공동 연구팀은 동식물 웨어러블과 AI, 블록체인을 하나의 반도체 칩으로 통합하는 '스마트팜 SoC(System on Chip)' 개발을 추진 중이다. 전명산 소셜인프라테크 대표는 "로봇과 기계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알려진 '피지컬 AI'를 동식물 등 자연 환경에 접목할 계획"이라고 했다.

과학기술계는 동식물 웨어러블 기술이 '생체 기반 IoT(사물인터넷)'와 '리빙 센서 네트워크'의 기반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센서가 기계에서 생명체로 확장되면서 숲과 바다, 농경지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데이터 플랫폼으로 연결된다는 분석이다. 인간이 자연을 관찰하던 시대에서, 자연과 데이터를 주고받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