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여 년 전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천지창조'를 그리던 미켈란젤로는 작업 내내 얼굴 위로 떨어지는 물감과 씨름해야 했다. 이처럼 중력 때문에 액체가 아래로 쏟아지는 현상은 오랫동안 피하기 어려운 자연법칙처럼 여겨져 왔다. 그런데 국내 연구진이 이러한 문제의 근본 원인인 '중력 불안정성'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김형수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교수 연구진은 소량의 휘발성 액체를 혼합해 중력으로 인한 액체의 불안정성을 억제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12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사이언스(Advanced Science)' 온라인판에 지난 1월 게재됐으며, 표지 논문으로 선정됐다.
연구진은 거꾸로 매달린 액체에 소량의 휘발성 성분을 섞는 방식을 제안했다. 휘발성 액체가 증발하면 액체 표면에서 농도 차이가 생기고, 이로 인해 표면 장력의 분포도 달라진다. 표면 장력은 액체 표면이 스스로를 안쪽으로 끌어당기는 힘으로, 물방울이 둥근 형태를 유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연구진은 표면 장력이 큰 쪽이 작은 쪽을 끌어당기면서 액체 표면을 따라 흐름이 만들어지고, 이 흐름이 아래로 떨어지려는 액체를 붙잡아 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실험과 이론을 통해 규명했다. 다시 말해, 액체 스스로 생긴 표면 흐름이 중력에 의한 불안정성을 억제하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산업 현장에서도 활용 가능성이 크다. 정밀 코팅과 인쇄, 적층 공정에서 더 얇고 균일한 액체막을 구현할 수 있고, 기울어진 표면에서도 안정적인 도포가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액체를 정교하게 다뤄야 하는 첨단 제조 공정의 품질 향상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김형수 교수는 "이번 연구는 별도의 외부 에너지 없이도 중력 불안정성을 능동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코팅·인쇄·적층 기술은 물론, 우주 환경에서의 유체 제어 분야로도 확장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 자료
Advanced Science(2026), DOI: https://doi.org/10.1002/advs.202520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