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 호흡기에 감염된 코로나 바이러스(주황색)의 전자현미경 사진./미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NIAID)

동물에서 사람으로 옮겨오는 감염병, 이른바 인수공통감염병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처럼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으로 번질 수 있어 늘 경계 대상이다. 그동안 과학계는 이런 바이러스가 사람 사이에서 퍼지려면, 먼저 동물 숙주 안에서 인간 감염에 유리한 방향으로 어느 정도 진화해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다.

하지만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샌디에이고) 연구진이 이러한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 '셀'에 6일(현지 시각) 발표했다. 인수공통감염 바이러스 대부분이 사람에게 넘어오기 전에, 인간 맞춤형으로 특별히 진화했다는 뚜렷한 흔적을 찾지 못했다는 내용이다.

연구진은 인플루엔자 A, 에볼라, 마버그, 엠폭스, 사스(SARS), 코로나19 등을 일으킨 여러 바이러스의 유전체를 비교했다. 특히 연구진은 인간 집단 유행이 시작되기 직전 시기에 주목했다. 만약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옮기기 전에 진화했다면, 그 흔적이 유전체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유전적 돌연변이는 바이러스에 유리해서 더 많이 퍼지고, 어떤 것은 불리해서 사라진다. 이렇게 어떤 유전적 변화가 살아남기 쉬운 환경적 압력을 '선택압' 또는 '진화적 압력'이라고 한다. 연구진은 이 패턴을 보면 바이러스가 인간의 몸이나 실험실 환경에 적응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분석 결과, 연구진은 동물 숙주에서 퍼지던 시기의 바이러스와, 사람에게 넘어오기 직전의 바이러스 사이에서 뚜렷한 차이를 거의 확인하지 못했다. 사람에게 대규모로 퍼지기 직전이라고 해서 바이러스가 갑자기 인간 감염에 유리한 방향으로 강하게 바뀌었다는 증거가 없었다는 뜻이다. 오히려 눈에 띄는 변화는 바이러스가 사람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전파된 뒤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2009년 신종플루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바이러스는 돼지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람에게 넘어오기 전까지는 돼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보이는 일반적인 진화 패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 집단으로 들어온 뒤에는 새로운 숙주에 맞춰 더 잘 퍼질 수 있도록 바뀌었다.

이 결과는 코로나19 기원 논쟁과도 맞닿아 있다. 앞서 제이 바타차리아(Jay Bhattacharya) 미 국립보건원 원장은 지난 1월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인 SARS-CoV-2가 실험실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반면 세계보건기구(WHO)가 파견한 전문가그룹은 SARS-CoV-2 바이러스가 박쥐에서 유래했으며, 중국 우한 시장에서 판매되는 동물들에게 전파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 내렸다.

조엘 베르트하임(Joel Wertheim) UC샌디에이고 교수는 "진화의 관점에서 볼 때, SARS-CoV-2가 실험실에서 선택을 거쳤거나, 중간 숙주에서 오랫동안 특별히 진화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며 "자연적인 동물-인간 전파에서 기대할 수 있는 모습과 맞아떨어진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실험실에서 조작되었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또 하나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1977년 러시아 독감을 일으킨 H1N1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다른 패턴을 보였다. 이 바이러스는 1950년대 유행한 바이러스와 유전적으로 지나치게 비슷해, 자연 상태에서 오랜 기간 진화했다고 보기 어려웠다. 연구진은 "진화 패턴 역시 자연적 전파보다는 실험실에서 반복 증식한 바이러스와 비슷했다"며 "백신 실험 과정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오랜 추측을 뒷받침하는 새 증거"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바탕으로 "오히려 많은 바이러스가 이미 기본적으로 사람을 감염시키고 사람 사이에서 퍼질 수 있는 잠재력을 어느 정도 지닌 채 자연계에 존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베르트하임 교수는 "따라서 대유행의 시작점에서 더 중요한 것은 바이러스가 얼마나 완벽하게 진화했느냐보다, 사람이 얼마나 다양한 동물 바이러스에 자주 노출되느냐일 수 있다"며 "팬데믹 대비의 초점을 특정 '슈퍼 바이러스'를 미리 찾아내는 데만 둘 것이 아니라, 야생동물과 가축, 인간 사이의 접촉면을 줄이고 이상 징후를 조기에 포착하는 데 더 무게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Cell(2026), DOI: https://doi.org/10.1016/j.cell.2026.0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