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는 세계적인 연구 중심 대학이지만, 의과대학과 병원이 없어 의과학자 양성에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대만 포모사그룹 산하 장경기념병원과 장경대학 의과대학이 가진 임상 경험과 연구 역량이 합쳐지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왕뤠이위(샌디 왕·64) 포모사바이오 회장 겸 포모사 플라스틱 그룹 경영관리감독위원회 상무위원은 지난 20일 대전 카이스트 본원에서 조선비즈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포모사 플라스틱 그룹은 1954년 대만에서 설립된 복합기업으로, 플라스틱 중 가장 흔히 쓰이는 폴리염화비닐(PVC) 생산 세계 1위다. 현재 석유화학뿐 아니라 바이오, 전자부품, 친환경 소재 등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있다. 그룹의 2024년 전체 매출은 약 2조1019억대만달러(약 96조원) 수준이다.
왕뤠이위 회장은 포모사 그룹을 창업해 세계적 석유화학 기업으로 성장시킨 고(故) 왕융칭 회장의 딸이다. 왕 회장은 1984년 미국 뉴욕대에서 회계학을 전공하고 그룹에 합류해 경영관리 등 주요 사업을 맡아왔다. 그는 '기업의 지속 가능성과 사회적 책임'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며, 바이오·청정에너지·에너지저장시스템(ESS)·자원순환 등 미래 산업으로의 구조 전환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왕 회장은 이날 카이스트로부터 명예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번 명예박사 수여의 배경에는 카이스트와 포모사 그룹의 협력이 있다. 포모사 그룹은 카이스트에 향후 5년간 약 180억원 규모의 연구 투자를 진행하기로 했다. 양측은 협력의 상징으로 카이스트-포모사 바이오 연구센터(KAIFOC)를 설립해 다학제·국제 공동 연구를 추진 중이다.
왕 회장은 "명예박사학위는 개인에게 주는 영광이 아니라, 지금까지 카이스트와 함께해 온 노력에 대한 인정"이라며 "기업인으로서 사회적 책임과 기여의 기반을 닦아 놓으신 부친의 뜻을 계속 이어가라는 격려이자 채찍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카이스트와 포모사 그룹의 협력은 '임상-연구 연계'에 방점이 찍혔다. 카이스트의 연구 역량에 장경기념병원 측의 임상 경험과 데이터, 인프라를 결합해 의과학자 양성의 기반을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장경기념병원은 약 1만2000병상 규모를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카이스트는 장경기념병원이 축적한 환자 조직 임상 데이터 등을 기반으로 공동 연구를 진행하며, 퇴행성 뇌 질환 환자 조직을 활용해 오가노이드(미니 장기) 제작, 신약 개발 등을 하고 있다.
협력 범위는 바이오에만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포모사 측 관계자는 포모사 그룹이 직접 설립한 명지과학기술대와 카이스트가 인공지능(AI)·에너지 등 첨단 산업 분야에서 인력 교류와 공동 논문 발표를 시작했으며, 앞으로 상업화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왕 회장은 "기업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연구가 필요하다. 따라서 카이스트와의 만남은 행운이자 기업의 운명을 가를 중요한 시기"라며 "이번 협력은 한국과 대만이 과학기술을 매개로 우호적 관계를 넓혀 가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왕 회장은 카이스트 졸업생들에게 "같은 지식을 배워도 성패를 가르는 건 결국 일에 임하는 태도와 열정"이라며 "일을 단지 '일'로만 여기면 재미가 없지만, 내가 하는 일이 사회에 어떤 도움과 가치를 주는지 바라보면 목적이 달라진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