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영국 남서부의 글로스터셔 주 튜크스베리 지역이 물에 잠긴 모습. 이 지역은 30일 이상 이어진 강수로 마을 중심가에 홍수가 발생했다./연합뉴스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서쪽으로 1시간 30분가량 이동하면 도착하는 서리(Surrey)는 인구 120만명의 근교 거주지다. 9만명 이상이 런던으로 출퇴근하는 이 도시에서 지난달부터 통근길의 중간 거점 역할을 하는 도킹(Dorking) 역부터 홀섬(Horsham) 역까지 약 22㎞ 구간이 폐쇄됐다. 30일 이상 이어진 비로 선로 제방이 무너지면서 해당 구간의 열차 운행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영국 기상청에 따르면 서리를 포함한 남부 잉글랜드 지역의 대부분 관측소에서는 올해 1월 내내 비가 내린 것으로 관측됐다. 우스터, 콘월, 데본 등 지역에서는 지난 9일까지 40일 연속 비가 왔다.

영국뿐 아니라 유럽 곳곳이 이례적인 기상 현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베리아반도는 올해 들어 연달아 2개의 폭풍이 강타하면서 사상자가 발생했고, 북유럽은 2010년 이래로 가장 추운 1월을 보냈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의 원인을 북극 제트 기류로 보면서, 기후 변화가 이상 기상을 고착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13일 포르투갈 북부 코임브라 지역의 모습. 이 지역에서는 태풍으로 인한 폭우 경보로 3000여명이 대피했다./연합뉴스

◇태풍에 한파…궂은 연초 보내는 유럽

영국 기상청은 지난 9일 공식 X(옛 트위터) 계정을 통해 "비가 멈추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시나요? 일부 지역에서는 실제로 그랬습니다"라며 지역별 강수 일수를 공개했다. 올해 1월 잉글랜드 남부의 평균 강수량은 790㎜로 1836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고, 북아일랜드는 149년 만에 가장 습한 1월을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BBC에 따르면 이번 비로 잉글랜드 전역에서 수천 가구가 홍수 경보를 피해 대피했으며 300채 이상의 주택이 침수됐다. 거대한 호수로 변한 농경지에서는 겨울 작물이 썩어나가고, 도로 곳곳에는 거대한 싱크홀이 생겨 교통 마비가 일어났다. 남부 잉글랜드의 농부 제임스 윈슬래드 씨는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그냥 버티는 수밖에 없다"며 "우리는 가축을 위한 사료나 물 등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기후 변화를 고려한 정부의 인프라 투자가 절실하다"고 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위치한 이베리아 반도는 올 초 태풍 '레오나르도'와 '마르타'에 연달아 타격을 입었다. 지난 11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1월 태풍 피해를 본 포르투갈 북부 지역에 다시 한 번 시속 200㎞의 강풍이 몰려왔다. 가디언은 올해 들어 이베리아반도에서만 최소 7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스페인과 포르투갈 일부 지역이 과달키비르강 유역은 '100년 만의 홍수'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전했다.

비구름이 남부 유럽으로 집중되면서 핀란드, 노르웨이 등 북부 유럽은 2010년 이래 가장 추운 1월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핀란드 북부의 툴피오는 지난달 9일 영하 42.8도, 노르웨이 북부의 카라쇼크는 지난달 11일 영하 41.5도를 기록해 2010년 이후 최고치 기록을 경신했다. 1월 말 다시 찾아온 한파 탓에 폴란드에서는 38명이 추위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지난해 동기 대비 2배 늘어난 수치다.

핀란드 북부 라플란드 지역의 퓌하툰투리 마을에서 한 남성이 물을 공중에 뿌려 바로 얼어붙는지 확인해보고 있다./로이터

◇원인은 제트기류 남하와 '기압 장벽'

비구름이 남부 유럽 상공에서 계속 생성되는 원인은 남하한 제트기류 때문으로 분석된다. 고위도와 중위도의 온도 차 때문에 발생하는 제트기류는 북대서양 상공에서 빠르게 흐르며 북극의 찬 공기가 남하하는 것을 막고 저기압을 밀어낸다. 그런데 올해는 제트기류가 이례적으로 남하하며 영국과 이베리아반도 상공에 고착된 것이다.

여기에 북유럽 상공의 강력한 고기압이 장막 역할을 하는 블로킹(Blocking) 현상이 더해졌다. 거대한 고기압 장벽에 비구름대가 막히며 영국 상공에서 비를 계속 뿌리는 '무한 반복'이 일어났다. 영국 기상청의 닐 암스트롱 수석 예보관은 가디언에 "겨울 비가 반복 재생되고 있다"고 표현했다.

남하한 제트기류는 한국에도 영향을 미쳤다. 북극의 차가운 공기가 한반도로 자주 내려오면서 극한 한파가 지속된 것이다. 한반도에도 블로킹 현상이 함께 발생하면서 북극 찬 공기가 오래 머물며 1월 내내 강추위가 지속됐다.

◇"기후 변화가 극단적 기후 현상 심화"

학계는 이러한 이상 현상이 기후 변화로 인해 지속적으로 더욱 강하게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기 온도가 1도 상승할 때마다 공기는 약 7%의 수분을 더 머금게 돼 지구의 평균 기온이 높아질수록 폭풍이 불러일으키는 비의 양이 과거보다 많아진다는 것이다.

제트기류의 불안정도 더 자주 발생할 확률이 높다. 영국 리딩 대학교의 수자원 연구원인 제스 뉴먼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북극의 온난화로 북극과 중위도 사이의 온도 차가 줄어들면서 제트기류가 뱀처럼 사행(蛇行)하거나 특정 지역에 정체되는 현상이 잦아지고 있다"며 "이로 인해 극단적 기상이 한 지역에 오래 머무는 '블로킹 현상'도 더 빈번해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