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 과자를 주면은 코로 받지요." 어릴 때 불렀던 동요처럼 코끼리의 코는 투박해 보이지만 촉각이 민감하기로 유명하다. 납작한 토르티야를 부수지 않고 집고 땅콩 하나도 잡을 수 있다. 코를 손처럼 다루는 능력은 1000개에 이르는 수염에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독일 막스 플랑크 지능형 시스템 연구소의 캐서린 쿠헨베커(Katherine Kuchenbecker) 교수 연구진은 "첨단 현미경 기술로 코끼리 코의 수염을 분석한 결과, 뿌리와 말단 부분의 구조가 달라 닿는 물체를 눈으로 보듯 감지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13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이번 연구에는 베를린 훔볼트대와 슈투트가르트대 연구진도 참여했다.
◇수염의 물리적 구조가 센서 기능
연구진은 첨단 현미경으로 코끼리 수염의 구조를 분석해 이미 연구가 많이 된 쥐의 수염과 비교했다. 가장 큰 차이는 유연성에 있었다. 쥐의 수염은 밑에서부터 끝부분까지 단단하다. 또 수염이 박힌 피부 아래에는 별도의 근육이 있다. 쥐는 수염을 이리저리 휘저어 물체를 감지한다. 코끼리는 그런 근육이 없다. 그렇다면 수염을 이리저리 움직이지 않고도 물체를 감지하는 내장 능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코끼리 수염은 손발톱이나 머리카락처럼 구조 단백질인 케라틴으로 이뤄졌다. 케라틴 자체는 촉감을 감지할 수 없다. 대신 수염은 신경 세포로 둘러싸인 모낭에 박혀 있다. 수염이 물체에 닿아 진동하면 모낭에서 신경 신호가 발생한다. 연구진은 위아래가 다른 코끼리 수염 구조가 신경 신호를 증폭하는 데 적합하다는 사실을 밝혔다.
동물원에서 자연사한 아시아 코끼리에서 5㎝ 길이의 수염을 뽑아 컴퓨터 단층촬영(CT)과 전자현미경으로 내부 구조를 나노미터(10억분의 1m) 단위까지 분석했다. 코끼리 수염은 뿌리와 끝 모두 납작한 사각형 모양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내부 구조는 달랐다. 피부에 박힌 뿌리는 미세 구멍이 많고 단단했지만, 끝 부분은 조밀하고 고무처럼 부드러워 물체에 닿으면 쉽게 움직였다.
연구진은 이처럼 수염의 강도가 각기 다른 특성이 신호 강도의 변화를 증폭시켜 물체가 닿는 위치를 길이 전체에서 감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코끼리 수염은 능동적인 움직임 없이도 감각을 최적화하는 재료 설계를 통해 일종의 내장형 '물리적' 지능을 구현한다는 것이다. 수염 하나하나가 자체 판단 기능을 갖춘 정밀 센서라는 말이다.
◇지능형 로봇의 감각 기능에 적용 가능
실제로 코끼리는 사람과 비교하면 고도 근시에 가깝다고 알려졌다. 10~20m 정도 거리의 물체만 선명하게 볼 수 있다.그보다 멀면 물체의 세부 형태를 구분하지 못하고 움직임만 감지한다. 코끼리는 큰 머리를 자유롭게 돌릴 수 없어서 뒤에 있는 물체를 보려면 돌아서야 한다. 이런 단점을 수염 센서가 달린 코로 극복한 셈이다.
코끼리 코의 수염은 자체 보호 기능도 갖췄다. 코끼리 수염은 다시 자라지 않아 한 가닥이라도 잃으면 코에 영구적인 감각적 맹점이 생긴다. 연구진은 뿌리 부분에 있는 미세한 구멍들은 수염이 충격을 흡수하도록 도와 정밀 센서가 손상되지 않도록 방지한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로봇에 코끼리의 수염을 모방한 기술을 적용해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악천후나 야간에도 주변 환경을 탐색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사전 단계로 코끼리의 수염의 확대 복제품을 3D(입체) 프린터로 만들었다.
공동 교신저자인 앤드루 슐츠(Andrew Schulz) 박사는 "눈을 감고 '수염 지팡이'라고 부른 확대 복제품으로 물체를 두드리자, 접촉 지점마다 다른 감각이 느껴졌다"며 "코끼리 수염처럼 강도가 부분마다 다르게 만든 생체 모방 센서는 컴퓨터 계산 비용을 거의 들이지 않고도 정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Sciene(2026),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dx8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