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서울 성북구 KIST 본원에서 오상록 원장을 만났다. 그는 "사람이 60년을 살면 비로소 한 주기가 완성된다는 뜻으로 '환갑(還甲)을 맞게 된다. KIST의 지난 60년도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발전이 성숙기에 이르기까지 거쳐온 축적의 시간이었다. 앞으로는 한계를 돌파하고 세상을 바꾸는 임무를 달성하는 연구소로 거듭나겠다"고 했다.

"1966년 2월 KIST는 서울 청계천 6가 낡은 한일은행 건물에 있는 10평짜리 방에서 시작했어요. 최형섭 초대 소장을 포함해 직원은 딱 세 명이었고요. 가난과 결핍의 역사를 끊어내고 과학기술로 나라의 운명을 개척하겠다는 이들이 모였지만, 그 시작은 미미했습니다."

오상록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원장은 지난 6일 인터뷰에서 "사람이 60년을 살면 비로소 한 주기가 완성된다는 뜻으로 '환갑(還甲)'을 맞게 된다. KIST의 지난 60년은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발전이 성숙기에 이르기까지 거쳐온 축적의 시간이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KIST는 1960년대 가난한 경공업의 나라였던 대한민국에 뿌리내린 최초의 종합연구기관이다. 1965년 5월 박정희 전 대통령은 당시 존슨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담 자리에서 베트남 파병에 대해 보답을 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자, "과학 기술을 발전시킬 연구소 설립을 도와달라"고 했다. 존슨 대통령은 1000만달러 원조를 약속했고, 우리 정부에서 1000만달러를 더해 KIST를 설립했다. KIST 설립 당시 80㎏짜리 쌀 한 가마 값은 3000원 정도였다.

1969년엔 서울 성북구 화랑로에 연구소 건물을 지었다. 해외에 나가 있는 한인 과학기술자를 수소문해서 고국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원내 아파트와 대학교수의 2~3배 수준의 임금을 줬다. 오 원장은 "지금도 본원엔 1970년 1월 KIST 초창기 연구소 주역 31명의 사진이 걸려 있다. 나라 발전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고국에 돌아온 선구자들이었다"고 했다. '한국 IT 대부'로 불리는 성기수 박사, 포항종합제철소 설립을 이끈 김재관 박사, 정밀화학 연구를 시작한 채영복 박사 등이다.

KIST는 이후 한국 산업 혁신을 뒷받침해왔다. 1969년 '포항종합제철 건설 기술 계획'을 완성했고, 1972년엔 국내 최초로 '컬러TV 수상기'를, 1975년엔 국산 1호 미니컴퓨터 '세종 1호'를 개발했다. 2021년 12월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상온에서 동작하는 '휴대용 양자 컴퓨터'를 개발했다. 2024년 10월엔 이탈리아 제약사에 치매 신약 후보 물질 'CV-01'에 대한 3억7000만달러(약 5037억원)짜리 기술 이전 계약도 체결했다. 정부 출연 연구 기관 단일 기술 수출 중에선 가장 큰 규모다. 오 원장은 "이젠 KIST가 이런 개별 성과를 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국가가 당장 해법을 요구하는 임무를 해결하는 연구소가 되었으면 한다"며 "설립 60년 이후 KIST는 선진 기술을 추격하는 것을 넘어 한계를 돌파하고 세상을 바꾸는 임무를 달성하는 연구소로 거듭날 것"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휴머노이드를 비롯한 피지컬AI, 차세대 반도체와 양자 기술, 청정수소, 기후·환경, 뇌과학, 신약, 우주 복합 소재 등 7개의 임무를 중심으로 연구소를 재편했다. 최근엔 권인소 전 카이스트 교수 같은 석학을 피지컬AI 연구단장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오 원장은 "축구단 운영을 위해 스타 감독을 영입하는 것과도 비슷하다"고 했다.

오 원장은 "마침 정부에서 연구 과제 중심 운영 제도(PBS)를 폐지하면서, 연구소도 단기·소액 과제 중심 연구에서 장기·대형 과제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덕분에 당장 눈앞의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더 큰 과제를 해결하는 데 역량을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영광의 기록을 넘어 미래 세대 삶의 질을 끌어올릴 수 있는 답을 찾는 연구 기관으로 거듭나겠다"고 했다.

KIST는 10일 서울 성북구 본원에서 60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행사엔 하정우 청와대 AI미래기획수석을 비롯한 과학기술계 주요 인사 400여 명이 참석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서 고(故) 최형섭 초대 소장의 특별 축사도 내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