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람이 피폭된 대규모 방사능 유출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누가 얼마만큼의 방사선 선량에 노출됐는지를 가려내는 일이다. 현장에서 어떤 사람을 지금 바로 병원으로 후송해야 하는지 판단할 근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방사선에 과다 노출된 경우 치료 시점을 놓치면 생존 가능성이 급격히 떨어진다. 실제로 전신 피폭량이 높은 경우에는 이르면 수일 내 중증 증상이 나타나거나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다.
문제는 장비와 인력이 부족한 재난 현장에서 이러한 판단과 조치를 신속히 내리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개인별 피폭 선량을 빠르게 가늠할 수 있는 저비용 현장 선량 평가 시스템이 개발됐다. 스마트폰을 핵심 장치로 활용해 현장에서 즉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방식이다.
일본 히로시마대 연구팀은 방사선 감응 필름과 스마트폰을 활용해 현장에서 즉시 측정값을 확인할 수 있는 휴대용 방사선 선량 평가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국제학술지 '방사선 측정'(Radiation Measurements) 2월호에 발표했다.
핵 공격이나 방사능 사고로 인한 방사선 피폭에서 인명을 보호하려면, 개인별 선량 평가가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 기존 측정법은 고가의 장비나 복잡한 실험실 분석을 필요로 해 대규모 비상 상황에서 즉각적인 대응에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EBT4 필름과 접이식 휴대용 스캐너, 스마트폰 카메라를 결합한 방식의 선량 평가 도구를 개발했다. EBT4 필름은 방사선 노출에 따라 색이 변하는 방사선 감응 필름으로, 색의 진하기를 통해 피폭량을 가늠할 수 있다. 이 필름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이미지를 앱으로 분석하면 방사선량이 계산된다. 예컨대 두피나 피부에 단번에 누적된 국소 선량이 10그레이(Gy) 수준이라면, 영구적인 탈모를 유발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로 평가된다.
연구팀은 스마트폰 기반 시스템이어서 필름과 스캐너 비용을 포함해도 전체 제작 비용이 70달러(약 10만원) 이하라고 밝혔다. 또 삼성 갤럭시폰과 애플 아이폰을 활용해 테스트한 결과, 일관되고 신뢰할 수 있는 선량 반응 데이터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사고 현장에서 즉각적인 방사선 선량 평가가 가능해야 의료 조치 등 신속한 결정이 이뤄질 수 있다"며 "최악의 사고 상황에서도 작동 가능한 방사선 선량 평가 도구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연구해 왔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현재 다양한 환경 조건에서의 안정성 검증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