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은 유전자변형생물체(GMO)가 전 세계적으로 상업 재배에 들어선 지 30년이 되는 해다. 한국은 GMO 작물 재배를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옥수수·대두 등 수입 곡물이 사료와 가공 원료로 쓰이면서 유전자변형 식재료가 공급망에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GMO를 둘러싼 찬반 논란은 반복되고 있다. 조선비즈는 국내외 실태를 살펴보고 우리 곁에 놓인 GMO를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미국 J.R. 심플로트의 유전자변형 감자(앞쪽)와 일반 감자./J.R. 심플로트

지난해 2월 미국 농식품 기업 J.R. 심플로트가 개발한 유전자변형생물체(GMO) 감자 'SPS-Y9′는 한국 농촌진흥청(농진청)으로부터 환경 위해성 적합 판정을 받았다. 2018년 4월 수입 승인을 요청한지 7년 만이다. 농진청은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위원회에서 유전자 이동성과 잡초화 가능성, 주변 생물체 영향 등을 검토해 결론을 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환경 위해성 심사 절차의 결론일 뿐이다. GMO 감자의 한국 내 유통과 사용을 위해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식품 안전성 심사 등 후속 절차를 밟아야 한다.

SPS-Y9은 저장·가공 품질 개선, 질병 저항성 등의 특성을 내세운 감자다. 해외에선 이미 심사가 진행, 완료된 국가가 있다. 2017년 캐나다 보건당국은 SPS-Y9를 식품·사료로 평가·승인했고, 자국 내 재배도 승인했다. 일본도 2019년 GMO 감자를 식품·사료 승인 목록에 올렸다.

업계에선 J.R. 심플로트의 사례가 한국 GMO 승인 체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한다. 이 같은 승인 지연이 누적되면서 미국 기업들이 미 정부와 경제단체를 통해 문제를 제기했고, 지난해 11월 공개된 한·미 정상급 공동 팩트시트에도 '한국은 농업 생명공학 제품의 규제 승인 절차를 효율화하고, 미국 신청 건의 지연을 해소한다'는 취지의 문구가 담겼다.

◇ "비전문가가 엉뚱한 자료 요구… 승인 지연으로"

앞서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 미 농무부(USDA) 등은 한국의 LMO(번식이 가능한 GMO) 심사 체계를 두고 "절차가 길고 일정이 가늠되지 않는다"는 문제를 반복적으로 제기해 왔다.

한국의 LMO 규제는 GMO의 국가 간 이동 등에 관한 법률(LMO법)을 뼈대로 한다. 수입 승인 심사는 식품·사료 등 용도에 따라 나뉘며, 주관기관 심사에 관계기관 협의가 붙는 구조다. 식품용 LMO 심사는 식약처가 주관하고, 심사 과정에서 농진청·기후에너지환경부·해양수산부(해수부) 등 관계기관이 협의 의견을 제출하는 방식으로 운영돼 왔다. 사료용 LMO 심사는 농림축산식품부(농진청)가 주관하고, 질병관리청·기후에너지환경부·해수부 등과의 기관 협의 절차가 함께 진행된다.

신청자 입장에서는 주관기관 심사와 관계기관 협의라는 이중 관문을 마주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기관별 요구 자료가 엇갈리거나, 같은 취지의 보완 요청이 단계별로 되풀이되면 일정이 길어진다.

최양도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교수는 "해외는 보통 1~2개 부처가 주관하고 나머지는 의견을 받는 정도인데, 한국은 동일 절차를 여러 기관에서 반복하는 형태"라며 "다섯 부처가 심사할 만큼 전문가가 많은 것도 아닌데, 일부는 비전문가가 심사 취지와 무관한 엉뚱한 자료 요구를 하기도 한다. 이런게 승인 지연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농촌진흥청 전경./뉴스1

◇ 승인 지연되면 교역 차질 빚어질 수도

LMO 승인 지연이 통상에서 비관세장벽으로 해석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국제 곡물·원료 시장은 한 나라의 승인 일정만 보고 움직이지 않는다. 옥수수·대두 같은 원료는 선박 단위로 대량 거래되며, 생산·저장·운송 과정에서 물량이 섞일(미량 혼입)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수출국은 새 품목이 상업화될 때, 주요 수입국의 승인 일정을 한꺼번에 맞추려고 한다.

그러나 어떤 나라는 특정 품목을 승인했는데, 어떤 나라는 승인하지 않았다면 수출국의 별도 관리가 필요하다. 이에 분리 저장, 전용 라인, 추가 검사와 서류 관리가 더해지고 비용 증가로 가격이 오르거나, 아예 물량 배정이 줄어들 수 있다. 자칫 미량 혼입까지 겹치면 통관 지연, 반송·폐기 같은 교역 차질로 이어질 수 있다.

유럽 위원회 농업 및 농촌 개발 총국은 지난 2010년 연구를 통해 "승인이 길어질수록 공급망 분리·관리가 어려워져 미량 혼입 위험이 커지고, 교역 차질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한국이 이 같은 변수에 민감한 이유는 조달 구조 때문이다. 한국은 사료·가공 원료를 해외에서 대규모로 들여와 축산·가공식품 공급망으로 투입한다. 원료 단계에서 일정과 비용에 차질이 생기면, 사료·축산·가공식품 업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 "전 세계에서 가장 심사 까다로워… 유럽은 유연한 제도로 상용화"

한국의 LMO 규제를 두고 내놓은 처방은 대체로 한 방향을 가리킨다. 규제를 더 풀라는 것이 아니라 책임 주체를 세우고 절차·일정을 명확하게 해 예측 가능성을 높이라는 주문이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는 2025년 공개 자료에서 "한국 LMO법의 국가 책임 기관인 산업통상부가 제도 정비를 주도해야 한다"며 "LMO법에서 심사에 5개 기관의 참여를 의무화하고 있어 법 개정 없이는 (절차) 간소화 여지가 제한된다"고 했다. 곽상수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생명공학 명예교수는 "주관 부처가 책임지고 심사를 맡고 다른 부처는 필요할 때 의견만 주는 구조가 합리적"이라고 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신청자가 제출하는 하나의 데이터 패키지를 바탕으로 평가에 필요한 핵심 정보와 결과를 부처 간에 공유·재사용하는 체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예컨대 호주·뉴질랜드 식품기준청(FSANZ)과 캐나다 보건부는 GMO 식품 안전성 평가에서 한 기관이 1차 평가서를 작성하고 다른 기관이 이를 2차로 검토·보완하는 '평가 협업'을 통해 중복 작업을 줄인다. 다만 최종 승인 여부는 각 기관이 별도로 결정한다.

유럽식품안전청(EFSA)은 GMO 신청 절차를 완전성 점검(형식·서류 요건을 충족했는지)과 검증(접수할 수 있는 수준인지), 과학적 평가 같은 단계로 안내한다. 완전성 점검을 통과한 뒤에는 통상 6개월 이내에 총괄 의견을 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한다.

이효연 제주대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보면 한국은 심사가 가장 까다로운 나라로 꼽힌다"고 했다. 이어 "유럽을 포함한 많은 나라가 보다 유연한 제도로 상용화를 진행해 왔다"면서 "현 단계에서는 부처 간 데이터를 공유하고, 한 곳에서 일관되게 심사하는 체계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