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HBM(고대역폭 메모리)의 글로벌 패권을 놓고 경쟁하는 가운데, 이르면 내년 상용화를 앞둔 HBF(고대역폭 플래시 메모리)가 10년쯤 후에는 HBM 수요를 뛰어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HBF는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사라지지 않는 낸드플래시 메모리 여러 개를 수직으로 쌓아 저장 용량을 대폭 확대한 것이다.
김정호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는 3일 'HBF 연구 소개 및 기술 개발 전략 설명회'에서 "HBF 상용화 시점은 2027년 말~2028년쯤이 될 것이며, 2038년부터는 HBF 수요가 HBM을 넘어설 것"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HBM의 기본 개념과 구조를 창안하고 설계 기술을 정립한 주역으로 'HBM의 아버지'로도 불린다. 그가 이끄는 KAIST 테라랩은 일찌감치 HBM을 설계해 국내 기업들이 HBM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주춧돌을 놓았고, 현재는 HBF 기술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김 교수는 "인공지능(AI) 시대엔 1인당 100TB(테라바이트)의 메모리가 필요해진다"며 "이른바 '메모리 헝그리' 시대에 AI 반도체의 속도는 HBM, 용량은 HBF가 맡게 될 것"이라고 했다. AI의 즉각적인 연산에 필요한 핫(hot) 메모리는 HBM이 담당하고, 방대한 과거 정보를 저장하는 콜드(cold) 메모리는 HBF가 맡는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AI 시대가 고도화될수록 수요가 급증할 HBF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두 회사가 HBM 기술은 물론이고 낸드플래시와 패키징 역량도 보유해 HBF로 확장할 수 있는 기술 기반을 갖췄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AI 성능 경쟁은 그래픽처리장치(GPU)가 주도해 왔지만, 앞으로는 메모리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될 것"이라며 "HBM과 HBF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메모리가 AI 컴퓨팅의 표준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AI 업계 일각에서는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가속기 생태계에 HBF가 도입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에 SK하이닉스는 상용화를 목표로 HBF를 개발하고 있고, 미국 플래시 메모리 업체 샌디스크도 HBF 개발에 나선 상태다.